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지영준(29.코오롱)은 일찌감치 ‘포스트 이봉주’로 주목받아 온 한국 마라톤의 기대주다.
고교 시절부터 5,000m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대학,실업팀을 거치며 체계적으로 마라톤을 배운 지영준은 노련한 경기 운영과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갖춰 ‘한국 마라톤의 대부’ 고(故) 정봉수 코오롱 감독이 생전에 마지막 노력을 쏟아 부었던 선수다.
[화보] 아시안게임 종합2위…자랑스런 그들의 모습
1999년 고교 최대어로 코오롱에 입단한 지영준은 풀코스 데뷔전이던 2001년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15분대로 우승해 가능성을 입증하더니 1년 만에 2시간8분대로 기록을 줄였고,2003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는 2시간8분43초로 1위에 불과 1초 뒤진 준우승을 차지하며 차세대 기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영준의 마라톤 인생은 우직하게 앞만 보고 달리기에는 잔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2005년 초 갑작스런 부상으로 출전하기로 했던 모든 레이스를 접어야 했고,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오롱 마라톤팀이 내분을 겪는 바람에 동료와 함께 한때 숙소를 이탈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그만둘 생각마저 할 정도로 방황하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지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2시간19분35초의 저조한 기록으로 7위에 그치고 말았다.
5연패에 실패한 한국 마라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고,지영준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시련은 그치지 않았다.
4월 대구국제마라톤에서 다시 2시간8분대 기록을 내고 우승해 부활하는가 했지만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완주를 포기하는 등 불운이 찾아왔다.
또 그해 가을 경찰대학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코오롱에 복귀하지 않고 독자 훈련을 치르겠다고 선언하면서 소속팀과 갈등도 재연됐다.
코오롱과 갈등을 봉합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 지영준은 올해 대구국제마라톤에서 2시간9분31초를 찍고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건재한 실력을 확인했다.아프리카 철각 30여 명을 따돌리고 거머쥔 소중한 준우승이었다.
결국 지영준은 기세를 몰아 27일 벌어진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역주를 펼친 끝에 1위로 골인했다.
여러 차례 소속팀과 갈등을 빚을 때 지영준의 곁을 지키며 실질적인 코치 역할을 해 줬던 원주 상지여고 정만화(50) 감독과 아내 이미해(28) 코치도 이날 경기장을 찾아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지영준의 금빛 역주에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지영준은 가족과 스승이 지켜보는 앞에서 결국 지나간 시련의 시간을 뒤로 하고 꿈에 그리던 아시안게임 월계관을 차지했다.
광저우=연합뉴스
고교 시절부터 5,000m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대학,실업팀을 거치며 체계적으로 마라톤을 배운 지영준은 노련한 경기 운영과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갖춰 ‘한국 마라톤의 대부’ 고(故) 정봉수 코오롱 감독이 생전에 마지막 노력을 쏟아 부었던 선수다.
<아시안게임> 지영준 ‘금빛 레이스’
(광저우=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한국 마라톤의 희망 지영준이 27일 중국 광저우 대학성 내 트라이애슬론 경기장에서 펼쳐진 아시안게임 남자 마라톤에서 힘찬 출발을 하고 있다.
(광저우=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한국 마라톤의 희망 지영준이 27일 중국 광저우 대학성 내 트라이애슬론 경기장에서 펼쳐진 아시안게임 남자 마라톤에서 힘찬 출발을 하고 있다.
[화보] 아시안게임 종합2위…자랑스런 그들의 모습
1999년 고교 최대어로 코오롱에 입단한 지영준은 풀코스 데뷔전이던 2001년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15분대로 우승해 가능성을 입증하더니 1년 만에 2시간8분대로 기록을 줄였고,2003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는 2시간8분43초로 1위에 불과 1초 뒤진 준우승을 차지하며 차세대 기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영준의 마라톤 인생은 우직하게 앞만 보고 달리기에는 잔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2005년 초 갑작스런 부상으로 출전하기로 했던 모든 레이스를 접어야 했고,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오롱 마라톤팀이 내분을 겪는 바람에 동료와 함께 한때 숙소를 이탈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그만둘 생각마저 할 정도로 방황하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지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2시간19분35초의 저조한 기록으로 7위에 그치고 말았다.
5연패에 실패한 한국 마라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고,지영준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시련은 그치지 않았다.
4월 대구국제마라톤에서 다시 2시간8분대 기록을 내고 우승해 부활하는가 했지만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완주를 포기하는 등 불운이 찾아왔다.
또 그해 가을 경찰대학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코오롱에 복귀하지 않고 독자 훈련을 치르겠다고 선언하면서 소속팀과 갈등도 재연됐다.
코오롱과 갈등을 봉합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 지영준은 올해 대구국제마라톤에서 2시간9분31초를 찍고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건재한 실력을 확인했다.아프리카 철각 30여 명을 따돌리고 거머쥔 소중한 준우승이었다.
결국 지영준은 기세를 몰아 27일 벌어진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역주를 펼친 끝에 1위로 골인했다.
여러 차례 소속팀과 갈등을 빚을 때 지영준의 곁을 지키며 실질적인 코치 역할을 해 줬던 원주 상지여고 정만화(50) 감독과 아내 이미해(28) 코치도 이날 경기장을 찾아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지영준의 금빛 역주에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지영준은 가족과 스승이 지켜보는 앞에서 결국 지나간 시련의 시간을 뒤로 하고 꿈에 그리던 아시안게임 월계관을 차지했다.
광저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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