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人] 도이치증권 조사 진두지휘 이정의 금감원 국장

[포커스 人] 도이치증권 조사 진두지휘 이정의 금감원 국장

입력 2011-02-28 00:00
업데이트 2011-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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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대화내용으로 혐의 입증해냈다”

“우리 자본시장의 격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1월 11일 세계의 이목이 한국에 쏠렸다.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 회의의 첫날이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날 국내 증시는 ‘옵션쇼크’로 몸살을 앓았다. 2000을 바라보던 코스피가 장 마감 직전 50포인트 넘게 폭락했다. 특별한 악재가 없었는데도 2조원이 넘는 매도 물량이 삽시간에 쏟아져 피해가 속출했다. 국가 중대사가 있던 날, ‘금융 테러’가 일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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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의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1국장
이정의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1국장
금융당국은 3개월여의 조사 끝에 지난 24일 세계적인 투자은행(IB)인 도이체방크 계열의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공모해 시세조종했다고 결론 지었다. 한국 도이치증권에 6개월 일부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고, 홍콩·뉴욕의 임원 등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이상한 거래였죠. 마침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상황을 파악한 뒤 이튿날 특별조사팀을 꾸려 조사에 돌입했습니다.”

옵션쇼크 조사를 진두지휘한 금융감독원 이정의(54) 자본시장조사1국장은 조사 활동을 이같이 돌이켰다. 2개월 조사 과정 가운데 지난해 말 2주 동안 이어졌던 홍콩 현지 조사가 하이라이트였다. 관련자 모두 한국에서 조사받는 것을 꺼려해 박연길 팀장 등을 홍콩으로 보냈다. 금감원 홍콩사무소에서 주문 도시락으로 하루 세끼를 해결하며 밤늦게까지 혐의 입증에 매달렸다. 상대가 외국인이라 통역을 경유한 날카로운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여기에 문답서까지 한글과 영어로 작성하며 단어 하나하나의 뉘앙스까지 꼼꼼히 따졌다. 한명을 조사하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매매 데이터와 관련자들의 메신저 대화 내용이 혐의 입증에 큰 역할을 했다.

“도이치 쪽은 글로벌 IB의 통상적이고 일반적인 거래 기법이라고 주장했죠. 하지만 다른 나라 금융시장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거래한 적이 있는지 자료를 제시해 보라고 하자, 내놓지 못했습니다.”

국제 금융·증권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다자간양해각서(MMOU)에 지난해 가입한 덕도 봤다. 가입 뒤 첫 해외 공조 사례였다. 과거 해외 조사는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으나 이번엔 당당히 조사 사실을 통보하고 필요 사항에 대해 협조를 얻었다.

이 국장은 이번 조사가 우리 금융당국이 불공정한 시장 참여자에 대해서는 신속·공정·엄정하게 제재할 준비와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외국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나날이 지능화되는 불공정거래 등을 입증하기 위한 조사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국내 금융당국에는 통신사실조회 권한이 없다. 다양한 제재 수단이 없어 규제 효과가 떨어지는 부분도 마찬가지. 미국이나 영국 등은 감독당국이 과징금을 물릴 수 있지만 우리는 형사 고발 외에 뾰족한 제재 수단이 없다.

1986년 증권감독원으로 입사한 이 국장은 1997년 본격적으로 조사 업무를 시작했다. 파견 기간 등을 제외하면 10년 넘도록 자본시장을 들여다봤다. “피조사자들이 일상 생활을 해야하니까 밤에 문답 조사를 많이 하다 보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후배들에게 조사 업무가 특별하다는 자긍심을 많이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 사진 홍지민·오달란기자

icarus@seoul.co.kr
2011-02-2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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