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 남아돈 저소득층 ‘긴급복지’

200억 남아돈 저소득층 ‘긴급복지’

입력 2013-03-04 00:00
업데이트 2013-03-04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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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질병 의료지원 신청 年1회→평생 1회로 기준 강화

호흡기 장애가 있는 A(40)씨는 몇 달 전 호흡이 가빠지고 열이 올라 응급실에 실려 갔다. 선택진료비와 각종 검사 등 비급여 탓에 진료비가 170만원이나 나왔지만 감당할 길이 없었다. A씨의 아내는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통해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시청에 찾아갔지만 “이번에 신청하면 같은 질병으로는 다시 신청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섰다. A씨의 아내는 “남편이 언제 또 쓰러질지 몰라 다음에 신청하기로 하고, 이웃들에게 손을 벌렸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저소득층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생겼을 때 생계비와 의료비 등을 지원해 주는 긴급복지지원제도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지원 기준이 전면 개정된 뒤 생계와 주거지원 실적은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의료지원은 기준이 엄격해져 지원 실적이 대폭 줄었다. 정부는 지난해 전면 개정에 이어 올해도 생계와 주거지원 기준을 완화했으나 의료지원 기준은 그대로 둬 의료지원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긴급복지지원은 저소득 가정의 가장이 사망하거나 갑자기 수술 등의 사유로 생계에 위기가 왔을 때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까지 생계비와 주거비, 의료비 등을 지원해 주는 제도다. 그동안 의료지원에 예산의 90% 정도가 편중됐다는 지적에 따라 생계와 주거지원 기준은 완화하고 의료지원 기준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난해 지침이 전면 개정됐다. 생계와 주거지원은 가장이 실직하거나 휴·폐업한 경우, 노숙인 등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주거지원의 금융재산 기준도 300만원 이하에서 500만원 이하로 완화됐다.

반면 의료지원은 같은 질병이나 부상으로는 1년에 한 번 신청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평생 한 번만 신청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 번 지원받은 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심사를 거쳐 한 번 더 지원받는 것은 가능하다.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경우 예외적으로 지원됐던 상급병실료와 선택진료비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생계지원은 2011년 5672건(27억 700만원)에서 지난해 9913건(47억 40만원), 주거지원은 489건(95억원)에서 1115건(231억원)으로 2배 정도 늘었다. 그러나 의료지원은 3만 3908건(426억원)에서 2만 4884건(292억원)으로 줄었다. 의료지원이 큰 폭으로 줄면서 연초 배정된 예산 589억원 중 200억원이 남아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 지원사업에 전용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지원을 줄인 대신 생계와 주거지원 기준을 완화해 지원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정숙 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층사업팀장은 “저소득층이 대체로 건강도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신청 횟수가 너무 제한적이고, 비급여 부담도 저소득층에 떠넘겼다”면서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괸 격”이라고 비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3-03-0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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