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 긴급진단] (하) ‘도덕적 해이’ 논란

[국민행복기금 긴급진단] (하) ‘도덕적 해이’ 논란

입력 2013-03-14 00:00
업데이트 2013-03-1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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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안갚으면 행복해지는 이상한 나라” 인터넷 성토

국민행복기금이 6개월 이상 연체채무의 원금을 50~70% 탕감해 주기로 하면서 꼬박꼬박 빚을 갚아 온 성실 채무자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대부업체 등의 채권도 떠안아 주기로 해 금융기관이 엄격하게 대출을 심사할 요인이 사라지고 있다는 푸념도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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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의 채무조정 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은 가장 포괄적인 채무 탕감 대책이란 평가를 받는다. 채무자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연체기간이나 원금 탕감률 중 하나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마련인데, 국민행복기금은 양쪽 모두에 관대하기 때문이다.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은 3개월 이상 연체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원칙적으로 원금 감면 혜택이 없다.

금융기관이 이미 추심업체 등으로 넘긴 채권에 대해서만 원금을 최대 50% 탕감해줄 뿐이다. 3개월 미만 연체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리워크아웃은 연체이자만 없애준다.

캠코는 원금을 최대 30%까지 감면해 주지만, 빚이 5000만원 이하인 사람만 대상으로 한다. ‘카드사태’ 뒤 급증한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시적으로 운영한 한마음금융과 희망모아 역시 일시상환자에 한해 원금을 30%까지 깎아줬다.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캠코의 바꿔드림론은 연체 중인 빚이 있으면 신청할 수 없다.

빚에 허덕이면서도 연체를 하지 않은 가구는 100만 가구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 가구는 그 ‘성실성’ 때문에 되레 원금 탕감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3일 ‘저소득층 가계부채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민행복기금의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연체가구 수는 49만 7000가구”라고 추정한 뒤 “월평균 가처분소득 72만 3000원 중 원리금 상환액이 71만 8000원으로 한계상황에 처했지만 빚을 연체하지 않아 국민행복기금의 구제 대상이 안 되는 가구는 106만 7000가구”라고 집계했다.

빚을 갚지 않고 버틴 사람은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탕감받고, 빠듯한 형편에도 꼬박꼬박 빚을 갚아 온 사람은 원금은 커녕 이자도 깎아주지 않는 캠코의 바꿔드림론을 써야 하는 모순이 생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중채무자들이 모인 인터넷 게시판에는 현재 시행 중인 채무조정 프로그램과 국민행복기금을 비교하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빚을 안 갚으면 행복해지는 이상한 나라’라는 성토성 냉소도 보인다.

‘사상 최대 규모의 빚 잔치’를 하게 된 금융기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정부가 나서서 금융기관의 부실·악성채권을 떠안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금융기관의 ‘묻지마 대출’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영일 한국개발원(KDI) 연구위원은 “대출심사 체계 개선과 도덕적 해이 방지, (기금 수혜자에 대한) 일자리 연계 등 근본적인 대책이 수반되지 않으면 이름만 바꾼 국민행복기금이 계속 필요할 수밖에 없고 그 과실은 따먹는 사람만 계속 따먹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단순한 빚 구제가 아닌, 자립·자활 유도에 초점을 맞춘 구제책이 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2013-03-1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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