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공사 5년간 갚을 빚 20兆…돌려막기 ‘허덕허덕’

지방공사 5년간 갚을 빚 20兆…돌려막기 ‘허덕허덕’

입력 2013-03-18 00:00
수정 2013-03-1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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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의 ‘채무’로 분류되는 지방 공기업의 공사채 발행액이 4년 새 4배로 급증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추가 발행된 채권의 대부분이 과거에 발행한 채권의 만기를 연장하기 위한 ‘돌려막기’용이라는 데 있다.

지방공기업 채무는 결국 ‘국민의 빚’으로 남는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정부의 철저한 관리, 정확한 타당성 분석, 감시 활동으로 재정건전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작년 지방공기업 공사채 발행 10조원…대부분 ‘돌려막기’ 목적

1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작년 23개 지방도시공사가 발행한 공사채는 모두 10조1천801억원으로 전년(5조5천506억원)보다 83.4% 급증했다.

이는 4년 전인 2008년의 2조5천410억원에 비해 4배로 늘어난 금액이다.

작년 한 해에만 공기업 1곳당 평균 4천400억원어치의 채권을 발행한 셈이다.

빚의 양과 증가 속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빚의 성격이다.

최근 발행되는 공사채의 대부분은 이전에 발행한 채권 가운데 만기가 도래한 물량을 상환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내는 ‘돌려막기’ 성격의 채무인 것이다.

작년에 3조9천986억원의 채권을 발행한 에스에이치공사(SH공사)가 대표적 사례다.

이 공사 관계자는 “작년 신규 발행 채권은 7천억원 정도이고 나머지는 모두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갚기 위해 발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로 만들어진 채무의 80% 이상이 이미 낸 빚을 갚기 위한 ‘2차 빚’인 셈이다.

작년에 1조1천777억원어치를 발행한 인천도시공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관계자는 “작년에도 그랬듯이 올해에도 정부에 승인신청을 할 공사채 8천258억 중 2천억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채권의 만기 연장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 부동산 침체로 사업 실적 악화

지방 공기업이 빚 돌려막기를 해야 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진 것은 최근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부동산 시장의 상황과 관련이 깊다.

국내 부동산 경기가 정점을 찍었던 2006∼2008년 지자체들은 택지 개발 사업에 집중적으로 뛰어들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05년 4만384㎡였던 택지 공급 면적은 2007년 6만5천232㎡로 2년 만에 61.5% 급증했다.

특히 수도권의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택지공급 면적은 같은 기간 2만1천525㎡에서 4만3천704㎡로 103.0%나 증가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럽재정위기가 닥치며 한국 경제도 침체에 빠져들었다.

내수 경기가 얼어붙은 와중에 가계 부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정부가 나서 각종 규제를 부과하자 부동산은 극심한 불황에 접어들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총 7만5천180가구로 작년 같은 달(6만2천949가구)보다 19.4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분양 주택수는 작년 하반기 중 5개월 연속 늘어나며 거듭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서민용 임대 주택공급을 주도해왔던 지자체의 채무 변제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수도권의 한 도시공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의 부진으로 분양이 안 되다 보니 채권 만기가 돌아와도 갚을 여력이 없어 만기를 연장하게 됐다”고 밝혔다.

◇ 전문가들 “철저한 사업 검증·감시 필요”

지자체들이 채권 발행을 늘린 결과, 2017년까지 앞으로 5년간 상환해야 할 채권의 액수는 20조8천361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만 6조5천억원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도 수습에 나섰다.

안전행정부는 최근 공사채 발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막연한 사업성만으로 대규모 자본을 끌어들일 수 없도록 사업 타당성에 대해 사전 승인을 받고, 발행 목적을 반드시 명시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6개월간 공사채 발행 신청은 아예 받지 않는다.

재정 전문가들은 지방공기업의 부실이 꽤 심각한 상태이고 이는 곧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더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백흥기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사업 추진 전에 철저한 예비타당성 분석을 시행하고, 수익성 사업은 민간기업과 같은 수준의 타당성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 연구위원은 “중복되는 업무를 수행하는 지방공기업 간에는 역할 재조정이 필요하다”며 “광역시ㆍ도, 시ㆍ군ㆍ구 지방공기업 사이에 비효율성 제거를 위해 통폐합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혁승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중앙정부의 재정건전성을 지키려고 국책사업에서 공기업을 활용하는 행태가 문제”라며 “국가의 전체적인 재정건전성을 생각하지 않고 지자체에 사업을 떠맡기면 결국 후대에 큰 빚을 남기게 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공기업 내 감시와 견제 장치가 취약하기 때문에 엄정한 타당성 검토가 안 되는 실정”이라며 “시민사회가 주요한 의사결정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에서는 공기업이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방안이 시민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경실련 부동산감시팀 최승섭 간사는 “개발공사들이 분양시기를 앞당기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부동산 활황기에는 고분양가로 폭리를 취하다가 사정이 어려워지자 서민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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