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한 발빠른 대응 ‘외면’… 신용·전세대출과 별 차이없어
정권과의 ‘코드’ 등을 의식해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내놓은 월세 대출 상품이 있으나마나한 상품으로 전락했다. 판매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실적이 ‘0’에 가깝다.8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우리월세안심대출’은 출시 한 달 만에 간신히 1건(800만원)을 팔았다. 지난달 1일 ‘신한월세보증대출’을 내놓은 신한은행은 실적 공개를 꺼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창구 문의는 점차 늘고 있다”면서도 “공개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 은행은 ‘물건’을 내놓고 보니 막상 수요가 많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상품 전략 자체가 잘못됐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두 은행 실무자들은 “서민들은 무 자르듯 ‘월세 자금’만 부족한 게 아니어서 월세를 포함해 생활비 명목으로 대출을 많이 받는 것 같다”면서 “이를 분리해 접근한 게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요보다는 ‘설계’의 문제가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월세안심대출’은 신용대출이라 이미 신용대출을 많이 받았다면 실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적다.
신한은행은 서울보증보험의 보증을 끌어들이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대출로만 제한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아파트, 주상복합 월세만 대출해 주고 다세대·연립 주택이나 오피스텔은 대출해 주지 않는다. 신용등급도 7~8등급으로 제한해 대출 대상자가 극히 적다. 월세를 빌려야 할 정도로 자금사정이 빡빡한 서민들은 이미 신용대출을 받았거나,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민들의 월세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목 아래 상품이 출시됐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업계는 두 은행이 금융당국의 코드에 발빠르게 맞추려다가 ‘계륵’을 떠안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고객에게 대출해 주면 부담이 커지다 보니 보증사를 거치거나 신용등급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되면 기존의 전세자금 대출이나 신용 대출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2013-05-09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