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도 여행·온천·화장품 자회사 세울 수 있다

병원도 여행·온천·화장품 자회사 세울 수 있다

입력 2013-12-13 00:00
업데이트 2013-12-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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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형태 약국도 허용…시민단체 “영리병원 준비 단계” 반발

앞으로 병원을 경영하는 의료법인들도 여행·온천·화장품·건강식품 등 다양한 업종에서 투자를 받아 자회사를 세우고 이익을 꾀할 수 있게 됐다.

또 약사들이 법무법인처럼 유한책임회사를 설립하고 곳곳에 지점 형태의 약국을 둘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진료’라는 본업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규제를 최대한 풀어 의료기관의 수익성·효율을 개선하자는 게 정부의 취지이지만, 의료계와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영리병원 전 단계”, “동네 약국 말살” 등의 부정적 반응과 우려도 만만치 않다.

◇ “자회사 부대사업 이익으로 진료 서비스 개선”…의료법인간 합병도 허용

13일 대통령 주재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논의된 ‘투자활성화 대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보건의료 분야 규제 개선안은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을 허용하고 부대사업 범위도 넓히는 것이다.

의료법에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의료법인이 고유목적인 의료에 전념하도록 원칙적으로 자법인 설립을 허가하지 않았다. 겸할 수 있는 부대사업 종류도 의료인 교육·장례식장·의료기기 임대 및 판매·산후조리 등 8개로 제한해왔다.

그러나 이제 정부는 의료법인이 회사 또는 비영리법인 형태 자법인을 만들어 부대사업이나 의료수출에 나서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가능한 부대사업의 종류도 여행·외국인 환자 유치·의약품 개발·화장품·건강보조식품·의료기기 개발·온천·목욕·체육시설 등까지 크게 늘려준다.

의료법인이 재무적 투자자, 여행·숙박·의료기기 업자, 의료 신기술을 보유한 기업 등과 함께 해외환자유치 전문기업, 해외 검진센터 등 현지법인, 여행사, 화장품회사, 건강보조식품회사, 장례식장 전문기업 등을 자유롭게 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건강보험 보장 강화로 병원의 비급여 부분이 계속 축소되는 반면, 수가(건강보험이 의료서비스에 지급하는 대가)는 당장 충분히 올려주기 어려운 만큼 병원들이 부대사업을 통해 자구책을 찾도록 ‘숨통’을 틔워준 것으로 해석된다. 자법인을 만들면 주식·채권 발행을 통해 외부 자금을 투자받기 수월해지고, 전문경영인 책임 아래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이 병원을 운영해도 자법인 설립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학교법인 등과 형평을 맞추는 의미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이른바 ‘빅5’ 초대형병원들은 모두 의료법인이 아니라 학교·재단·사회복지·종교법인으로, 자법인 설립 규제가 의료법인 만큼 까다롭지 않다. 대표적으로 서울대병원법인과 연세학교법인은 이미 헬스케어서비스·의약품 공급 자회사를 통해 수익사업을 펼치고 있다.

다만 규제가 풀려도 모든 의료법인이 자법인을 거느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상속·증여법상 ‘성실공익법인’ 요건을 충족하는지 확인받아야한다. 자법인에 대한 지분율이 10%이상이라면 주무부처인 복지부장관의 허가까지 필요하다.

또 정부는 자법인 설립 남용을 막기 위해 모(母)의료법인 순자산의 일정비율(30% 검토)까지만 자법인 출자를 허용하고, 자법인 수익을 모법인의 고유목적인 ‘진료’사업에 재투자하도록 의무화하는 등의 장치도 마련할 계획이다.

의료법인이 경영 합리화 차원에서 다른 의료법인과 합병할 수 있도록 의료법 개정도 추진한다. 지금처럼 규제 때문에 부실 의료기관이 파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대국민 의료서비스나 의료자원 측면에서 손해와 낭비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 법인 약국 설립은 반드시 약사들만…신약·신의료기기 출시 기간 2~10개월 단축

10년이상 논란거리였던 법인의 약국 설립도 명시적으로 허용된다. 현행 약사법은 약국 개설 주체를 약사·한약사 등 자연인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법인은 약국을 세울 수 없다. 그러나 이미 2002년 9월 헌법재판소는 결사의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이 조항이 ‘헌법과 맞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현업 약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지연된 약사법 개정을 내년 상반기 중 마무리 짓겠다는 게 정부측 입장이다.

다만 약국 설립·운영 법인에는 약사들만 참여할 수 있고, 법인 형태는 약사 사원들이 유한책임을 지는 ‘유한책임회사’만 허용된다.

정부는 주먹구구식 영세 약국들과 차별된 대형 법인약국이 다양한 처방약을 갖추고 교대제를 통해 심야·휴일 근무를 늘리면 약을 짓는 국민의 편익도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자들이 보다 빨리 신약이나 새로운 의료기술을 접할 수 있도록 출시까지 걸리는 시간도 2~10개월 줄여준다. 현재 신의료기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더라도 신의료기술평가(1년)·경제성평가(90일)·요양급여대상 지정 고시(60일) 등을 거쳐야 비로소 시장에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품목허가 신의료기기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 여부만 판단, 일단 판매를 허용하고 나중에 신의료기술평가를 진행하는 방식이 도입된다. 신약 역시 지금은 품목허가 이후에나 건강보험 약제급여 여부와 수준이 결정되지만, 효능·효과 검증을 위한 식약처의 안전성·유효성 검사만 끝나면 품목허가 전이라도 약제급여 결정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총리령 등이 손질된다.

또 상급종합병원에 외국인 환자 제한 비율을 적용할 때 국내 환자 이용률이 낮은 1인실은 아예 대상에서 빼기로 했다. 현재 병상 수 기준 5%로 묶여있는 외국인 환자 비중은 결과적으로 12%(2천500병상 추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같은 맥락에서 내년 상반기 중 공항·항만·공항-도심 도로·지하철·명동 등 주요 관광지에서 외국인 환자 유치 목적의 국내광고도 허용된다. 지금까지는 국내 환자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에 따라 의료법으로 외국인 유치 의료광고를 막았지만, 이제 글로벌 경쟁을 감안해 풀어주겠다는 얘기이다.

이밖에 내년 중 미술심리상담사·음악심리지도사·놀이재활사·인지행동심리상담사 등에 국가공인(자격증)제도를 도입하고 2018년까지 한방물리치료사 국가시험을 시행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 “주식회사 직전 단계까지 규제 푼 것” vs “의료법인 본연의 기능 훼손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시민단체와 보건의료단체들은 대체로 ‘영리법인으로 가는 수순이 아니냐’며 경계하는 분위기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우회적으로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병원 합병을 통한 네트워크 영리병원을 도입하겠다는 뜻”이라며 “현행 의료법상 공익적 기관, 비영리법인인 병원이 백화점식으로 영리형 부대사업을 지나치게 확장하게 두는 것은 결국 의료법의 기본 취지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주식·채권 발행을 통한 자법인의 자본 조달과 의료 관련기업과의 합작투자를 유도함으로써 주식회사 병원의 직전 단계까지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고,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실장 역시 “수익성 중심의 자법인이 모의료법인의 자금조달용으로 이용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정부는 ‘영리병원과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의료법의 영리병원 금지 조항은 진료가 목적인 모의료법인을 주식회사 형태로 만들어 이익을 나눠갖지 말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 과장은 이어 “이번 대책의 취지는 의료법인에 자법인을 통한 부수적 수익사업 기회를 늘려주자는 것으로, 이 이익을 다시 의료법인에 투자해 종사자들의 처우나 의료서비스 개선에 쓰도록 규정할 것이므로 영리법인 허용과는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대형 법인약국 진출로 동네 약국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 실장은 “법인약국들이 점차 덩치를 키우면 결국 대기업들이 진출할 것”이라며 “1차 의료기능으로서 약국의 역할을 무시하고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저해하는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복지부측은 이 문제 역시 앞으로 실행 과정에서 제어 장치를 둬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과장은 “무분별하게 법인약국이 범람해 ‘기업형슈퍼마켓(SSM)’과 비슷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법인에 참여하는 약사 수 등에 비례해 설립 가능 약국 수를 제한하는 등의 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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