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실험실서 주삿바늘 찔려 뎅기열 감염사고

국내 실험실서 주삿바늘 찔려 뎅기열 감염사고

입력 2016-04-14 07:06
업데이트 2016-04-14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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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 공개 않은 채 2년 지나 논문 발표

“생물실험실 안전 대책 강화 마련 필요” 지적

한 기업체의 생물실험실 연구원이 주삿바늘에 찔려 법정 감염병(4종)인 ‘뎅기열’에 감염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생물실험실 내 안전사고 예방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4일 질병관리본부가 ‘대한직업환경의학회지’ 최근호에 발표한 사례 보고서 논문에 따르면 2014년 1월 뎅기열 바이러스를 다루던 연구원이 바이러스 용액을 처리하던 주사기의 바늘에 찔려 뎅기열에 감염됐다.

실험실 연구원이 바늘에 찔려 뎅기열에 걸린 사례가 학계에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뎅기열은 38∼40도의 고열과 두통, 근육통 등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통상 5∼7일이면 회복하지만 일부 중증 환자는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대부분 열대·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특정 모기에 물렸을 때 감염되지만, 혈액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

해당 연구원은 바늘에 찔린 지 열흘이 지난 후 오한, 발열, 근육통, 발진 등 뎅기열의 증상이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결과 이 연구원은 바이러스가 묻어 있는 주삿바늘의 뚜껑을 닫다가 손가락을 바늘에 찔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원은 실험실의 규정대로 즉시 흐르는 물에 상처를 10분 이상 씻어냈지만 감염을 막지 못했다. 당시 실험실에는 소독약 등 응급처치 도구가 준비돼 있지 않았다.

이 연구원은 자체 보유한 진단키트로 매일 감염 여부를 검사했으며, 열흘째에 뎅기열 바이러스 감염 양성이 확인됐다. 증상은 그 다음 날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근육통이 가장 먼저 찾아왔으며 구토, 오한, 열감이 뒤따랐고, 이틀 뒤에는 양쪽 무릎 주위에 발진이 발생했다.

이 연구원은 바늘에 찔린 지 12일 만에 입원 치료를 시작했다. 입원 후 심해지던 증상은 치료 5일째에 사라졌다. 다행히도 입원 치료 8일 뒤에는 퇴원할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연구원이 뎅기열에 감염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안전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질병관리본부 ‘실험실생물안전지침’을 보면 바늘 사용을 되도록 제한하고,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주사기의 사용을 줄이고, 한 번 사용한 바늘의 뚜껑은 닫지 말라고 구체적으로 권고한다. 뚜껑을 닫다가 바늘에 찔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용한 바늘도 전용 용기에 담아 멸균, 폐기하라고 WHO는 강조한다.

하지만 이 실험실에는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 연구원은 주사기와 바늘을 대체할 수 있는 ‘피펫’(일정한 부피의 액체를 정확히 옮기는 데 사용되는 유리관)을 사용하지 않았다. 또 바늘 폐기 전용 용기가 없어 바늘을 폐기하려면 뚜껑을 닫아야 했다.

바늘에 찔린 직후에는 소독할 만한 응급처치 상비약 등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이 연구원은 결국 근처 병원에 갈 때까지 소독하지 못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소독을 못 했다는 점 자체가 감염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겠지만, 또 다른 2차 감염 등을 예방하려면 처음부터 제대로 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뿐 아니라 이 연구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열흘 동안 기존 실험실에서 다른 연구자들과 기존의 작업을 반복했다.

뎅기열 바이러스는 종류마다 증세나 예후 등이 다르다. 종류가 다른 뎅기열 바이러스에 이 연구자가 중복으로 감염됐다면 상태가 훨씬 심각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번 사고가 실험자의 부주의보다는 실험실 운영 등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실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하고, 이 방안을 실제 실험자들이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감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일부에서는 질병관리본부가 이 사고의 내용을 국민에게 제때 알리지 않은 데 대한 비판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이와 같은 사고가 국민에게 제때 알려졌다면 실험실 안전 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겠지만, 질병관리본부 내부에서는 그런 개념을 가진 전문가가 없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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