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최장수 온라인 RPG 만든 ‘PC방 알바 1호’

“벌써 20년…” 최장수 온라인 RPG 만든 ‘PC방 알바 1호’

입력 2016-05-09 07:12
업데이트 2016-05-0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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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장기 운영 기록 ‘바람의 나라’ 개발 송재경 대표“느린 모뎀 제약에도 첫 온라인 RPG 돌파구 내 기뻐”개발 현장에서 행복…스마트폰용 첫 RPG 작품에 도전

1990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전 캠퍼스에 컴퓨터 25대 규모의 전산실이 문을 열었다.

당시 국내에 생소했던 ‘인터넷’이 각 컴퓨터에 연결돼 ‘PC방의 조상님’ 같은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한 20대 청년이 매일 방의 설비를 관리하고 PC에 필수 소프트웨어를 깔았다. 신분은 ‘자봉’(자원봉사자)인 KAIST 전산학과 대학원생이었지만 하는 일은 영락없이 PC방의 ‘알바’(아르바이트생)였다.

컴퓨터와 게임에 빠져 밤낮 전산실에 틀어박힌 덕에 ‘램상주’(컴퓨터 주기억장치에 얹힌 상시대기 프로그램처럼 붙박이란 뜻)란 이공계다운(?) 별명도 얻었다.

이 ‘한국 PC방 알바 1호’는 수년 뒤 국내 게임사를 바꿨다. 1996년 한국 첫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한 것이다. 바람의 나라는 올해로 서비스 20년째를 맞는 세계 최장수 현역 MMORPG다. 사연의 주인공은 송재경(49)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

송 대표는 9일 경기도 판교 엑스엘게임즈 본사에서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지금 ‘바람의 나라’는 많은 개발자가 참여한 결과물이라 나만의 공으로 볼 수 없다”며 “단 과거 개발 단계에서 ‘이런 게임은 안된다’는 얘기를 아주 많이 들었는데 돌파구(breakthrough)를 만든 것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바람의 나라에 산파 역할을 한 게임은 2개. 송 대표가 대학원생 때 밤잠을 설치며 했던 초창기 RPG(역할수행게임) ‘넷핵’(Nethack)과 온라인 게임인 ‘머드’(MUD)였다.

두 게임은 한가지씩이 아쉬웠다. 넷핵은 던전(모험의 무대인 미로)의 모습을 간단하게라도 보여주는 그래픽 기능이 있었지만 여러 네티즌이 한 게임을 같이 하는 ‘온라인 멀티 플레이’는 불가능했다.

머드는 반대로 온라인 멀티 플레이가 됐지만, 그래픽이 없었다. 텍스트 기반이라 모험의 매 상황이 글로 나오고 동료와 채팅하면서 게임이 진행됐다.

가슴에 불이 붙었다. 넷핵의 장점인 그래픽 요소를 멀티 플레이가 되는 머드에 접합해 ‘그래픽 머드’를 만들면 기가 막힐 것 같았다. MMORPG란 말도 없던 시절에 그렇게 게임의 뼈대가 잡혔다.

“1990년대 모뎀 속도는 매우 느렸거든요. 텍스트도 겨우 전송해 화면에 글자가 탁탁 올라오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죠. 그런 상황에서 여러 사용자가 온라인으로 하는 그래픽 기반 게임을 만든다고 하니 다들 ‘기술적으로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전 ‘된다’고 보고 실행에 옮겼던 거고요”

‘바람의 나라’ 제작은 KAIST 박사 과정을 중퇴하고 한글과컴퓨터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다 시작했다. 친한 학부 동기(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인 김정주 현 NXC 회장과 1994년 말 게임 업체 넥슨을 창업하고 이듬해 내내 게임 개발만 했다.

느린 모뎀 문제는 사용자 컴퓨터에 게임 그래픽 데이터를 미리 깔아두면 극복할 수 있다고 송 대표는 봤다. 네트워크로는 ‘특정 그림을 어떻게 움직인다’는 가벼운 정보만 오가면 된다는 것. 만화광이라 평소 즐겨봤던 순정 만화 ‘바람의 나라’(김진 화백 작)를 게임 원작으로 삼았다.

바람의 나라는 송 대표에겐 ‘영원한 미완작’이다. 게임의 최종 출시를 수개월 앞둔 1995년 12월 개인 사정으로 넥슨을 퇴사했다. 마무리와 보완은 정상원(현 넥슨 부사장)과 서민(전 넥슨 대표) 등 다른 개발자가 했다. 바람의 나라는 1996년 4월 PC 통신용으로 출시됐고 같은 해 11월 인터넷 버전이 나왔다. 광대역 인터넷 보급과 PC방 유행이라는 순풍을 만나며 첫 MMORPG 바람의 나라는 국민 게임 자리에 올랐고일개 스타트업(신생벤처)이던 넥슨의 반가운 ‘돈줄’이 됐다.

송 대표는 차기작에 매달렸다. ‘끝까지 내 손으로 만든 게임’이 목표였다. 엔씨소프트로 자릴 옮겨 1998년 9월 출시한 한국 MMORPG의 걸작 ‘리니지’가 그것이다. 그런 리니지도 결과적으론 ‘내 손을 떠난 자식’이 됐다. 송 대표가 2003년 엔씨소프트를 떠나 엑스엘게임즈를 차렸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현재 운영되는 바람의 나라나 리니지에 대한 심정을 물어도 ‘내 작품’에 대한 낭만적 회고를 하지 않았다. 수많은 업데이트(개선)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원본의 자취가 사라지는 온라인 게임의 특성도 일부 영향을 미친 듯했다.

넥슨이 2014년 게임사의 중요 사료로서 어렵게 1996년 출시 때의 바람의 나라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을 때도 정작 송 대표의 손에는 게임의 원본 데이터가 없었다. 그는 “기록 보존 차원에서 원본을 들고 (넥슨에서) 나왔었다가는 (지적재산권 침해로) 범죄자가 됐을 것”이라며 웃었다.

개발자 겸 기업인으로서 이후 삶은 굴곡을 탔다. 엑스엘게임즈를 세우고 내놓은 첫 작품인 자동차 경주 게임 ‘엑스엘레이스’는 실패했고 2013년 완성한 대작 MMORPG인 ‘아키에이지’는 기대가 컸던 탓에 초기 혹평이 많았다. 아키에이지는 북미와 중국 등 국외에서 뒤늦게 인기를 끌며 회사를 살리는 공신이 됐다. 엑스엘게임즈는 2015년 연 매출 512억여원, 영업이익 120억여원 실적을 냈다.

“바람의 나라 만들 당시에도 매일 생기던 프로그래밍 난제를 해결해 후련해 하던 때를 빼곤 좋았던 기억이 딱히 없네요. 지금은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현재도 현역으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해요.”

송 대표는 현재 사장실 바로 앞에 사내 스튜디오(게임개발팀)를 차리고 생애 첫 스마트폰 게임 ‘달빛조각사’를 만들고 있다. 바람의 나라나 리니지처럼 애초 PC에서 돌아갔던 MMORPG를 모바일로 매끄럽게 구현한다는 게 골자다.

젊은 개발자 10여명과 매일 개발 상황을 논의하고 직접 프로그램을 짠다. 송 대표가 스튜디오의 자기 책상에 앉았다. 컴퓨터 1대와 모니터 2대 외에는 명판이나 장식품이 전혀 없는 ‘허허벌판’이다.

스튜디오 이름은 Q5. Q는 모바일 게임 프로젝트를 뜻하는 사내 분류 문자고 5는 달빛조각사가 이 중 5번째 프로젝트라서 나온 명칭이다. “스튜디오에 꼭 거창한 이름을 붙여야 하나요.” 송 대표가 웃었다. ‘한국 PC방 알바 1호’는 이렇게 다시 몰입의 길을 걷고 있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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