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금 함께 상환하라는 통에 대출 난민 신세

원리금 함께 상환하라는 통에 대출 난민 신세

입력 2016-05-12 10:28
업데이트 2016-05-1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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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대출 만기연장 어려워져…전세로 옮기기도

서울 마포구에 사는 강모(35세)씨는 5년 전인 2011년 5월, 급매로 나온 아파트를 4억 1천만원에 샀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도 월세로 매달 나가는 돈에 조금 더 보태면 이자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2년마다 이사하는 것도 번거롭고 보증금 올려주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집을 옮길 때마다 깨지는 복비와 이사비용도 아까웠다.

강씨는 집을 사면서 은행에서 2억6천만원을 대출받았다. 은행의 권유에 따라 5년 거치에 25년 원리금 상환을 선택했다. 은행 직원은 5년 뒤 원리금 상환 시점이 되면 같은 방법으로 또 거치기간이 있는 대출로 갈아타면 된다고 설명했다.

처음 대출을 받을 때와 달리 기준금리가 계속 내려가면서 4%가량 되던 대출 금리도 최근에는 2.9%까지 떨어졌다. 갚아야 할 이자도 매월 63만원으로 줄었다.

그리고 지난달, 거치 기간 종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와 다른 대출로 갈아타기 위해 은행을 찾았지만 강씨의 계획은 통째로 흔들렸다.

올해 2월부터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이 시작되면서 더는 거치 기간이 긴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은행에서는 강씨에게 이달부터는 이자뿐 아니라 원금도 분할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내던 이자의 두 배인 120만원씩 상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월급 실수령액이 300만원 정도로, 지금도 이자 내기가 부담스러운데 원리금을 같이 갚으면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빚 갚는데 써야한다”고 말했다.

집을 팔아 대출을 상환할까도 생각해 봤다. 다행히 집값은 처음 살 때보다 20% 정도 올랐다.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이 시행된 이후 주택 거래가 확 줄어 당장 집을 팔려면 제값을 받기 어려워 매도 생각은 접었다.

은행에서는 당장 원리금을 갚기 어려우면 신협이나 새마을금고를 이용해보라고 권고했다. 그런 곳에서는 아직 3년 정도 거치 기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금리가 연 4~5%로, 은행보다 높아 상호금융기관 대출도 포기했다.

은행에서는 마지막 방법으로 고정금리 원리금분할상환 방식으로 갈아타면 1년은 거치 기간을 가질 수 있으니 일단 대출을 갈아타고 1년 동안 어떻게 할지 준비하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다.

결국 강씨는 은행의 조언대로 1년간 이자만 내기로 하고, 고정금리 원리금분할상환 대출 상품으로 갈아탔다.

대신 금리는 3.2%로 올라갔고, 매월 납부해야 하는 이자도 69만원으로 6만원 정도 늘었다.

강씨는 일단 1년간 거치식으로 대출을 유지하면서 지금 사는 집은 전세를 준 뒤 전세금을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 집은 3억원에 전세를 주고, 이 3억원에서 2억원으로는 강씨가 살 집을 전세로 얻고 남는 1억원은 대출을 상환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남은 대출 잔액인 1억6천만원은 내년부터 원리금을 같이 상환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되면 매월 갚아야 할 돈은 76만원으로 원래 갚던 돈보다 월 13만원 정도 늘어나며, 사는 집은 전세 3억원 짜리에서 2억원 짜리로 줄어드는만큼 크기가 줄게 된다.

강 씨는 “정부가 집값을 띄울 때는 언제고 수요자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대출을 조이는 바람에 결국 부담은 늘고 삶의 질은 내려가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대출 규제도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당분간은 버틴다는 심정으로 전세로 살고, 대출 규제가 풀리면 다시 거치식 대출로 갈아탈 계획”이라며 “집값이 더 오른다는 확신은 없지만 대출 때문에 쫓기듯이 집을 헐값에 팔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 도입으로 강씨처럼 갑자기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게 늘어난 사람이 늘고 있다.

강씨처럼 더이상 거치식 대출을 받을 수 없거나, 기존의 만기일시상환대출을 받았던 사람 중 만기가 종료됐지만 만기 연장이 거부되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가이드라인 도입 전에는 만기일시상환 방식의 주택담보대출은 만기가 돌아오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만기 연장이 무난하게 됐다.

하지만 만기일시상환대출의 만기가 돌아오면 비거치식 원리금분할상환을 유도하라는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은행에서도 원리금 분할상환을 권유하고 있다.

원리금분할상환이 어려워 꼭 일시상환 방식으로 만기를 연장해야 한다고 하면 일부라도 대출을 갚아 대출 규모를 줄이고 대신 금리는 올리는 방식을 쓰고 있다.

국내은행 가계대출 담당 직원은 “가이드라인 시행으로 가장 부담이 커진 사람은 기존에 이자만 내던 대출자”라며 “은행 창구에서 왜 과거와 달라져 힘들게 하느냐며 항의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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