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직급 대신 직무로 불러…제일기획 광고인답게 ‘프로’ 통일
요즘 기업체들 사이에 호칭 파괴가 유행입니다. 금융권에서는 교보생명이 대표적입니다. 직급이 아닌 직무 중심으로 바꿔서 부르는데요. 마케팅 담당, 고객보호 담당, 정보보안 담당, 자산운용 담당 등 명칭만 봐도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한 겁니다. 회장님, 부사장님 대신에 ‘○○ 담당님’이 자리잡은 것이지요.회장, 전무 같은 딱딱한 호칭은 직급 간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인데 ‘계급장’을 떼고 커뮤니케이션(소통)을 수월하게 하자는 취지랍니다. 한 직원은 “신 회장이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없애자며 제안한 아이디어인데 무슨무슨 담당님이라고 하면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제일기획은 더 파격적입니다. 사장부터 사원까지 모두 ‘프로’입니다. 임대기 사장은 임 프로, 박규식 신문화팀장은 박 프로입니다. 광고를 만드는 곳이다 보니 좀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조직 분위기를 만들려는 노력이라네요. 비슷한 이유로 삼성바이오는 이름 뒤에 ‘담당’을 붙이고, SK텔레콤은 ‘매니저’를 붙입니다.
오히려 계급 차이를 두기 위해 호칭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롯데손해보험은 대표이사가 부사장급 이상이면 사장님, 전무급 이하면 대표님이라고 부릅니다. 원래는 직급 구분 없이 무조건 ‘사장님’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계열사의 ‘진짜 사장님들’ 눈치가 보여서라네요. 같은 대표이사라도 ‘급’이 다르다는 얘기지요. 이는 여러 계열사가 모인 그룹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그룹 내 보험사 CEO가 전무 1년차이고, 카드사 CEO가 부사장 3년차라면 호칭을 달리해야 한다”면서 “같은 CEO 간에도 조직 서열이 있고 선후배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서와 문화가 그대로인데 호칭만 바꾼다고 무슨 소용이냐고 냉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변화는 작은 데서부터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달라진 호칭만큼 자유로운 조직문화, 가까운 노사관계를 기대해 봅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2016-06-07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