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타워 부재에 최순실 악재…다시 부는 변양호 신드롬

컨트롤타워 부재에 최순실 악재…다시 부는 변양호 신드롬

입력 2016-11-27 10:28
업데이트 2016-11-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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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10년 만에 압수수색 ‘굴욕’…‘윗선’ 지시 따랐다 검찰 조사까지

‘변양호 신드롬이 다시 관가를 배회하고 있다’

내년 정책방향 설계에 한창 분주해야 할 정부 부처들이 연일 계속되는 악재로 무기력에 빠져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가운데 최근에는 기획재정부가 면세점 사업 비리 의혹에 연루돼 10년 만에 검찰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어수선한 관가 분위기는 최근의 탄핵 정국과 맞물려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커녕 연일 악재만 이어지는 탓에 관료 사회는 날이 갈수록 더욱 움츠러드는 분위기다.

◇ 청문회에 검찰 수사까지…관가에 다시 부는 변양호 신드롬

27일 관가에 따르면 최근 각종 악재가 겹친 기재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관료 선배인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시절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시비에 휘말렸다가 4년 법정 공방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인물이다.

변 고문 사건 이후 관가에서는 ‘책임져야 하는 일에는 손대지 않는다’는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한동안 사라지는가 했던 변양호 신드롬은 대우조선해양에 4조2천억원 규모의 지원을 결정한 서별관회의와 관련, 지난 9월 청문회가 열리면서 다시 관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 파문 확산은 기름을 부었다.

검찰은 올해 4월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발급 결정과 관련해 최순실과 재벌기업 간 뇌물이 오간 정황을 잡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면세점 특허 정책을 담당한 기재부 1차관실과 정책조정국, 관세제도과 사무실을 지난 24일 압수수색했다.

이는 변양호 신드롬을 불러왔던 2006년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으로 기재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가 검찰에 사실상 압수수색을 당한 지 꼭 10년 만의 일이다.

여기에 기재부 고위관료 출신인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됐고, 역시 엘리트 공무원인 최상목 현 기재부 1차관 역시 최순실 게이트 불똥이 튀어 구설에 올랐다.

조 전 수석은 구속영장이 기각돼 영어의 몸이 되는 일은 간신히 면했다. 최 차관 역시 대통령 및 경제수석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상관 지시’에 따라 실무회의를 주재했다가 공소장에 이름이 몇 차례 언급된 정도이기는 하다.

그러나 기재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결정짓고 책임지는 일’ 보다는 ‘정해진 일’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수장의 부재는 이같은 분위기를 더 부채질하고 있다.

후임 경제부총리에 오를 예정이었던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거취는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로 밀려난 상황이다.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관가 전반에 책임질 일은 하지 않으려는 복지부동의 분위기가 만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이같은 흐름 속에 지난 23일 유일호 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견위수명(見危授命·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다)’이라는 한자성어를 인용하며 분위기 다잡기에 나섰지만 흐름을 되돌리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유 부총리는 “대내외 상황이 매우 엄중하지만 기재부가 중심을 잡고 경제와 민생을 잘 보살펴 달라”고 주문했지만 바로 다음 날 검찰 압수수색이 실시되면서 빛이 바랬다.

◇ 전문가들 한 목소리로 “경제사령탑 우선 정해야”

변양호 신드롬 확산이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대내외 변수가 곳곳에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은 불안한 수주 전망으로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고 갤럭시노트7, 최순실 국정농단 등 예상치 못했던 돌발 악재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강한 보호무역주의 성향은 내년 수출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었던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위협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당장 경제·통상 분야에서 미국을 설득하기 위한 아웃리치(접근) 등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유 부총리와 임 부총리 내정자 간 어색한 동거가 기약 없이 계속되면서 정책의 구심점을 잃은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이 하루빨리 경제 컨트롤타워 구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1차적으로 경제사령탑을 먼저 정해야 한다. 우리 경제를 어떻게 소생시키고 위기를 예방할 수 있을지 비전을 갖고 임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내년은 대선 때문에 정쟁이 불가피하지만 정쟁을 하더라도 경제는 새로운 경제사령탑에 전권을 줄 수 있도록 여야가 합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새 행정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의 변화에 따라서 공무원 사회가 긍정적으로 움직여줘야 하는데 역할이 거의 마비된 상태가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그는 “어느 때보다 리더십이 중요시되는 사회인데 경제적 리더십이 없다는 것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 공백 사태가 내년 임기 말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대응하기 어려운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각종 악재에 등장한 변양호 신드롬이 새로운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없는 임기 말 ‘복지부동’ 현상과 맞물리면 관가 전체가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정부 부처와 청와대 정책수석과의 조율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지금 부총리도 임명을 못하고 있다”며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자리보전 자체가 큰 문제가 되다 보니 제대로 된 정책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무총리·부총리의 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각 부처 장관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총리의 기능도 중요할 수 있지만 각 부처 장관들이 소신껏 난국을 타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경제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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