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위협 인공지능·저성장 시대…기본소득 논의 불붙여

일자리 위협 인공지능·저성장 시대…기본소득 논의 불붙여

입력 2016-12-25 10:30
업데이트 2016-12-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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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년 내 인공지능 등의 발전으로 전 세계에서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진다.”(다보스포럼 보고서)

“내년 한국 경제는 장기 저성장 국면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경제추격연구소)

올해 초 한국사회는 ‘알파고 쇼크’를 겪었다. 인공지능(AI) 발전으로 실업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흘러나왔다.

여기에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 사회질서와 안정성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비화됐다.

모두가 이같은 문제의 해법을 고민할 때 기본소득이란 개념이 제시됐다.

모든 국민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정한 돈을 지급해 기본적인 복지수준을 보장하고 경기를 떠받쳐야 한다는 주장은 많은 주목을 끌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생소하지만 기본소득 관련 논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 저성장→임금하락→소비침체 ‘악순환’ 끊을 해법 될까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동월 기준으로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8.2%까지 치솟았다.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 7월 49개월 만에 처음 감소세로 돌아선 뒤 5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구조조정 등 여파로 고용시장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앞으로 전망은 더 어둡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었던 수출은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민간소비를 비롯한 내수마저 불안한 모습이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한강의 기적’으로까지 불렸던 한국 경제는 최근 수년째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내년까지 3년 연속 2%대 성장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가운데 경제 활력이 계속해서 떨어지면 고용 부진과 격차 확대 등의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돼 삶의 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성장정체 국면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의 대선 잠룡들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모든 개인에게 무조건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통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으로 서민들의 소비여력이 커지면 내수 지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자리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기본소득 논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논의 촉발…IT업계 지지 높아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에게 노동 여부와 재산 규모를 따지지 않고 지급한다는 기본적인 개념 때문에 진보진영의 급진적 복지정책 정도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자유주의라는 보수적 전통 위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먼저 우파에서는 기본소득이 전면 도입될 때 다른 복지 혜택은 모두 폐지한다는 원칙에 주목한다.

여러가지 복잡한 복지 프로그램을 기본소득으로 통합해 비용 누수를 줄이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작은 정부’라는 목표에도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취업을 유도하고 재정지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 규모를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제시한다.

반면 좌파는 대체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소득불평등이 심화하는 현실을 극복할 방안으로써 기본소득 필요성을 주장한다.

더욱이 기본소득을 통해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만큼 정치·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참여할 여력이 커지고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논리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진보진영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보다 높은 액수를 책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내외에서도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좌우의 구분이 없다.

IT업계에서는 기술 발전에 따라 단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만큼 기본소득으로 소비를 일정수준 유지시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지켜내자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투자사인 Y컴비네이터(YC)는 기본소득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포털사이트 다음 창업자인 이재웅씨가 이런 결정에 공감하며 “기본소득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정부는 “시기상조”…전문가 “미리 충분히 대비해야”

북유럽 지역인 핀란드와 스위스 등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실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국내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데다, 이 제도가 노동의욕을 떨어뜨리거나 산업계의 임금 삭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 결과 사람들은 헐거운 사회안전망 탓에 노후준비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면서도, 기본소득 도입에는 반대(77%)한다는 의견이 찬성(20.6%)을 압도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문제를 걱정한다.

국민 5천만명에게 월 50만원씩을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기본소득 규모는 연간 300조원에 이르게 된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월 국회에서 “기본소득 보장 방안 마련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고용 없는 미래’가 현실화하고, 양극화가 심해질 경우 기본소득 논의를 마냥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김동열 정책조사실장은 “설문조사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찬성 의견은 높지 않았지만, 적정한 기본소득 금액에는 월 50만원(39.6%), 100만원(32.9%)을 꼽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인식하는 기본적인 생활수준이라는 것이 많이 높아졌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한국에서도 충분한 준비기간과 제도·법령 검토를 거쳐 제주도 등 한정된 지역에서 기본소득을 시범적으로 도입해보고, 생산성과 업무효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만약 기본소득을 도입한다고 해도, 그 개념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여건을 만드는게 우선돼야 한다”면서 “충분한 연구와 이해관계자들 간의 토론, 정부 공청회 등을 통해 미리 충분한 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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