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돼지저금통/박대출 논설위원

[씨줄날줄] 돼지저금통/박대출 논설위원

입력 2010-07-15 00:00
업데이트 2010-07-1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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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한 국산 영화가 개봉됐다. 제목은 돼지꿈. 주인공은 순박한 중학교 교사다. 아내, 아들과 어렵게 산다. 어느날 돼지꿈을 꾼다. 아내가 이웃의 권유를 받아 부업으로 돼지를 키운다. 그러다가 약을 팔면 큰 이익을 남긴다는 사기꾼의 꾐에 빠져 우여곡절을 겪는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로는 안성기가 나온다. 배우 이덕화, 허준호의 작고한 부친 이예춘, 허장강 등 원로 배우가 출연한다.

소설가 추식의 ‘재건주택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당시 서울신문 시나리오 공모 당선 작품이다. 60년대 한국 영화의 걸작 중 한 편으로 꼽힌다. 영어 제목은 A Dream of Fortune. A Dream of Pig가 아니다. 돼지를 직역하지 않고, 의미를 제목에 담았다. 돼지는 다산(多産)과 부(富)의 상징이다. 돼지해에 태어나면 건강하고 부귀를 누린다고 한다. 중국 당사주(唐四柱)에 나오는 사주풀이다. 그러다 보니 저금통으론 돼지가 으뜸이다. 돼지저금통은 방 안을 장식하는 단골메뉴였다. 아이들에게 경제를 가르치는 매개체가 됐다.

돼지저금통은 ‘개인의 경제적 영역’에서 머물러 왔다. 부모님이 사주면, 동전을 모으고, 예금통장에 붓고…. 그런데 출발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 나눔의 영역’에서 비롯됐다. 미국 캔자스 주 마을에 윌버란 어린이가 있었다. 용돈 3달러로 새끼 돼지를 샀다. 돼지를 키워 판 돈으로 한센병 환자 가족을 도왔다. 그 내용이 한 신문에 소개됐다. 감동을 받은 독자들이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이웃돕기에 나섰다. 이것이 최초의 돼지저금통이다.

2002년 돼지저금통의 영역 이동이 있었다. 사적(私的), 공적(公的) 영역에서 정치적 영역으로 넘어왔다. 노무현 대선 후보의 ‘희망의 돼지저금통’ 얘기다. 이회창 후보에겐 ‘절망의 돼지저금통’이 됐다. 모금운동은 노무현 신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논란은 대선 와중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불법 선거운동 논란은 대법원의 유죄 판결로 종지부를 찍었다. 모금액의 허위 논란도 벌어졌다.

그제 돼지저금통이 또 등장했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주인공이다. 그는 돼지저금통 3개를 들고 전교조 사무실에 나타났다. 야당과 전교조는 ‘정치쇼’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강제로 막을 길이 없다.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조 의원은 “한 달에 한 번 내 발로 현금을 들고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논란은 계속될 것 같다. 우리에겐 늘 친근한 돼지저금통. 정치적 영역으로 넘어오면 소란스러워진다. 원래 영역에 머무는 게 나을 것 같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2010-07-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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