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퇴임 대통령/육철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퇴임 대통령/육철수 논설위원

입력 2013-02-21 00:00
업데이트 2013-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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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뒤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떠났다. 그는 봉하마을에서 열린 지지자 환영행사 말미에 “야~, 기분 좋다!”라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대통령으로서 국사(國事)의 중압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그 한마디에 응축시킨 듯했다. 그 역시 전임 대통령들처럼 재임 중 친인척·측근 비리에 수도 없이 시달렸다. 야당은 물론 언론과도 내내 불편했다. 사상 초유의 국회 탄핵까지 받았다. 그러니 권력이고 뭐고 얼른 툴툴 털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나흘 뒤면 물러난다. 지금쯤 만감이 교차하고 있을 것이다. 떠나는 대통령에게 별도의 퇴임식이 없는지라, 이 대통령은 지난 18일 라디오 고별 연설에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정치의 시대’를 넘어 ‘일하는 시대’를 열고, 대한민국의 권력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일꾼이 되고자 했다”면서 “저는 대한민국의 가장 행복한 일꾼이었다”고 말했다. 이튿날 출입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퇴임 연설에서는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며 “5년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모두 역사에 맡기고자 한다”고 했다.

5년이란 세월은 빠르기도 하다. 다들 대통령이 되면 모든 걸 다 이룰 듯 의지를 불태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만사 아니던가. 그만큼 대내·외적으로 천변만화하는 게 나랏일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5년이 힘들긴 했어도 기쁨이자 영광의 시간이기도 했다지만 퇴임 무렵에는 회한이 더 많이 남는 법이다. 그도 친인척과 측근 비리 탓에 재임 중 여러 노력과 성과의 빛이 바랬다. 정권의 업적에 대해 대통령 혼자 열심히 뛴다고 국민이 높은 점수를 매기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국민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었느냐가 가장 큰 잣대일 것이다. 다음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 공직자, 대통령의 지원으로 좋은 감투를 쓴 사람, 대통령 주변 친인척 등이 쌓은 공과와 언행의 총합도 평가에 포함된다. 대통령과 운명적으로 얽힌 인맥은 그래서 퇴임 후 평가에서 빠져나가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퇴임 회견에서 4대강 살리기를 자찬하고 “일을 해보면 우리를 알지만, 일을 모르면 많이 비판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역사에 모두 맡기겠다’는 진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4대강은 스스로 내세우지 않더라도 제대로 평가받을 날이 올 것이다. 이 대통령은 퇴임 후엔 또 다른 역사의 심판대에 오른다. 대통령마다 퇴임 뒤에 만신창이가 되곤 하는데, 이런 악순환을 끊고 국민의 영원한 봉사자로서 ‘행복한 일꾼’의 꿈을 이어가길 바랄 뿐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13-02-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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