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를 열다] 1970년 진흙탕이 된 서울 구로동 뒷길

[DB를 열다] 1970년 진흙탕이 된 서울 구로동 뒷길

입력 2013-03-13 00:00
업데이트 2013-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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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5월 4일 서울 구로동 버스 종점 근처 뒷길 모습이다. 어떤 사람은 걸어가고 있고 오토바이를 몰거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손수레에 가스통을 싣고 운반하는 사람도 보인다. ‘가리봉쌀집’ ‘부동산소개소’ 같은 가게 간판도 눈에 띈다. 그 시절 변두리 골목은 포장이 되지 않아 먼지가 풀풀 날렸다. 버스가 다니는 간선도로도 외곽으로 나가면 비포장인 곳이 많았다. 자갈이 튀는 길을 버스가 지나가면 차체가 흔들거렸다. 비포장도로가 가까운 동네에서는 바람이 불거나 자동차가 지나갈 때면 집들이 온통 먼지를 뒤집어썼다. 이런 길에서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이를 했다. 날이 맑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비만 오면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래서 비가 올 때는 장화가 필수품이었다.

서울 구로동은 구로공단이 생기면서 공장지대가 되었다. 구로공단은 1964년 5월부터 수출산업공단으로 조성된 곳이다. 시골에서 상경하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려고 몰려드는 곳이기도 했다. 한때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는 10만명을 넘어섰다. 1980년대 중반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 때문에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후 기업들이 줄고 노동자 수도 감소했다. 2000년대에 들어 정보기술(IT) 산업 단지로 육성되면서 이름도 서울 디지털산업단지로 변경되었다. 주된 업종도 제조업에서 출판, 영상, 방송통신, 정보서비스업으로 바뀌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2013-03-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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