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신문소설/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신문소설/서동철 논설위원

입력 2013-03-14 00:00
업데이트 2013-03-1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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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주영이 ‘객주’의 완결편을 집필 중단 28년 만에 내놓는다고 해서 화제다. ‘객주’는 작가의 고향이자, 소설의 무대인 경북 청송에 ‘객주문학관’이 세워지고 있을 만큼 이미 문학을 넘어선 고부가가치 문화상품이다. 전편은 1979년 6월 1일부터 1984년 2월 29일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됐는데, 완결편 역시 4월 1일부터 서울신문에 실린다. 작가는 당시 연재 중단 이유가 ‘역사에 대한 근력이 달려서’였다고 겸손해하지만, 고증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역사소설의 특성상 4년 9개월의 마라톤 집필은 심신의 근력을 완전히 연소시켰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문소설은 일본인이 발행한 한성신보에 1896년 실린 ‘신진사문답기’(申進士問答記)를 효시로 본다. 당시는 작가 이름도 명기하지 않았고, 완성된 소설을 소설란의 크기에 맞게 잘라 넣는 바람에 한 문장이 이틀치 신문에 나뉘어 실리기도 했다고 한다. 1906년 만세보에 이인직의 ‘혈의 누’가 발표되면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신문의 일부로 자리잡았고, 1917년 매일신보에 실린 이광수의 장편 ‘무정’은 신소설이 현대소설로 바뀌는 전환점이 됐다.

신문소설은 1954년 서울신문에 연재되면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온 정비석의 ‘자유부인’에서 보듯 독자의 취향을 감안한 대중성이 특징이다. 1970년대는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과 조해일의 ‘겨울여자’,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등이 대중성 높은 신문소설의 전형을 만들었다. 같은 시기 한편에서는 황석영의 ‘장길산’과 박경리의 ‘토지’, 김성한의 ‘임진왜란’ 등 대중성을 겸비한 대하역사물이 붐을 이루었는데, ‘객주’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태어난 것이다.

신문소설은 일정한 수입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작가들에게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황석영은 ‘장길산’의 자료구입비 명목으로 받은 적잖은 돈을 동료 문인들과 수유리 ‘니나노집’에서 일주일간 술판으로 탕진했다고 회고한다. 김주영도 ‘객주’를 쓰면서 평균 원고료의 두 배를 받았지만,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고초를 겪던 후배들에게 적지 않게 썼다고 한다. ‘과실’을 독차지하지 않고 문단의 동료들과 함께 나눈 사례일 것이다.

신문소설은 온라인 시대에 접어들어 일간신문의 지면에서 일제히 사라지다시피 한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다시 등장하는 추세이다. 세상의 변화에 민감한 젊은 작가의 재기발랄한 소설도 있지만, 무게 있는 작가의 호흡이 긴 작품도 보인다. ‘객주’ 완결판의 신문 연재가 그저 미완성으로 남을 뻔했던 한 작품의 완결에 그치지 않고 신문소설 부활의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3-03-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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