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칸막이 제거, 핵심 기득권 내려놔야/이기철 정책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칸막이 제거, 핵심 기득권 내려놔야/이기철 정책뉴스부장

입력 2013-03-29 00:00
업데이트 2013-03-29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이기철 정책뉴스부장
이기철 정책뉴스부장
지난 연말 겨울 휴가를 맞아 서해안 절경에 취해 남쪽으로 가족 동반 자동차 여행을 다녀왔다는 후배 이야기다. 석양에 빠져 가다 보니 한적한 시골마을, 아이 때문에 더 이상 여행하지 못하고 ‘민박’이란 간판이 걸린 집에 들어갔다. 방이 깨끗하고 따뜻해서 짐을 풀었다. 저녁식사를 좀 해달라고 했더니 민박집 주인 노부부는 손사래를 치더란다.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저녁을 해줄 수 없다는 민박 주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민박으로 하룻밤에 5만원이라며 돈만 밝히는 등 시골의 인심이 야박해졌고, 라면만 끓여 먹을 수 있게 한 노인네가 야속했다고 털어놨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후배는 민박집 주인의 처사가 당연하다며 설명을 이었다. 농어촌 주민의 소득을 올리고 이용자 편의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민박집의 식사 제공을 추진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기존 음식점 사업자들과의 갈등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또 국토교통부는 풍광이 좋은 농어촌 민박집에서 음식 제공을 허용하면 환경이 오염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에 합류했다. 2004년 이후 계속 그러고 있는 사이 식사를 제공하지 못 하는 민박집이 시골 인심만 나빠졌다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부처 이기주의에 막힌 칸막이 사례다. 부처 칸막이에 의해 국민이 불편을 겪거나 정부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정부 부처 간의 소통, 공개, 공유를 핵심 가치로 삼는 ‘정부 3.0’이 박근혜 정부의 화두다. 이를 실현하고자 부처 칸막이 제거를 들고 나온 것은 정부 개혁의 방향을 바로잡은 것이다.

칸막이 제거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남달리 강하다. 지난해 7월 대선 출마 선언에서도 칸막이 제거를 일성으로 내세웠다. 대통령 첫 업무보고가 있었던 지난 21일,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업무보고에서 당사자인 복지부 장차관, 식약처장을 비롯해 안전행정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농림부 등 다른 부처 국장들도 참석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도 대통령 옆에 앉았다. 소관 업무가 다른 청와대 수석들과 비서관들도 배석했다.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다른 부처 국장급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파격이었다. 업무보고에서부터 다른 부처의 ‘손톱 밑 가시’를 파악해 해당 부처가 스스로 칸막이를 제거하라는 뜻을 공직사회는 새겨 들어야 한다.

부처 칸막이 제거는 역대 정부에서도 노력했지만 효과가 미약했다. 민간과 공직과의 칸막이를 제거하려고 민간 경력자를 받아들이는 개방형 제도도 도입했다. 하지만 이들은 관료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칸막이에 막혀 왕따를 당하거나 적응에 고생했다. 참여정부는 행정정보공개제도를 도입했고, 이명박 정부는 취임 초창기 부처 칸막이 제거의 상징으로서 대통령비서실의 물리적 칸막이를 제거했다. 하지만 관료 특유의 배타적 조직 이기주의와 기득권에 막혀 성공하지 못했다.

칸막이 제거의 첫걸음은 핵심 업무를 다른 부처와 공유하고 공개하는 데 있다. 2010년 대통령과 그 가족의 치료를 맡은 국군수도병원을 이전한 것은 경호실이 핵심 업무를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공유했기에 가능했다. 칸막이 제거에 성공하려면 부처 간의 협업을 통해 성과를 내는 공무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부처 칸막이만 제거해도 행정 개혁에선 박수 받는 정부가 될 것이다.

chuli@seoul.co.kr

2013-03-29 30면
많이 본 뉴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