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층간소음과 소통/정기홍 논설위원

[씨줄날줄] 층간소음과 소통/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3-04-16 00:00
업데이트 2013-04-16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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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간섭’이란 게 있다. 같은 주파수를 지닌 음파가 겹쳐질 경우 어떤 때는 음파의 압축부와 압축부가 겹쳐져 소리가 강해지고 또 어떤 때는 압축부와 팽창부가 겹쳐져 소리가 약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음향기기에 작동하는 원리다. ‘소리의 공명’이란 말도 흔히 사용된다. 물체가 스스로 낼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 즉 고유 진동수와 같은 주파수의 소리를 만나 저절로 울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관악기는 공명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소리의 간섭과 공명이 감미로운 소리만 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가 뛰는 소리나 벽기둥에서 나는 소리가 다른 공간에서 더 크게 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공명현상과 무관치 않다. 아파트 전기기사들은 “ 윙윙거리는 소리가 낡은 전기계량기 등에서 비롯된 경우가 있고, 그 소리도 크게 들린다”고 한다. 소리를 듣는 입장에선 윗집과 옆집의 것이 헷갈리게 와 닿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소리가 난다고 막무가내로 윗집을 찾아가 목소리를 높였다간 망신당하기 십상이라는 애기다. ‘아파트 공화국’의 시대, 층간소음의 고통은 이미 참기 어려운 현실이 된 지 오래다. 피해자는 노이로제 증상을 호소할 만큼 그 정신적 피해가 막대하다. 이쯤 되면 휴식의 공간이어야 할 집은 ‘악마의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층간소음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는 층간 다툼은 폭행, 방화, 심지어는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환경부는 얼마 전부터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개설해 민원을 받고 있지만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법과 제도에 의해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개별 아파트 차원의 자구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법원이 그제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층간소음 분쟁과 관련, 아래층 주민에게 “위층 집에 들어가지 말고, 초인종을 누르거나 현관문을 두드리지 말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아래층 주민은) 전화를 하고 고성을 지르거나, 천장 두드리는 것은 가능하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양비양시론인 셈이다. 조선시대의 명재상 황희가 두 계집종의 다툼을 듣고 “너도 옳고, 또 네 말도 옳다”며 시비 아닌 시비를 가려준 이야기와 맥을 같이한다고나 할까. 주민공동체가 아파트 소음의 원인과 종류, 내부구조 등을 상호 이해하고, 이웃의 정을 나누는 ‘착한 소통’이 절실한 시점이다. 재판부가 “자주 마주치게 되는 이웃 관계의 특성을 감안해 아래층 주민에 대한 포괄적인 행동 제한은 하지 않았다”고 판시한 대목이 유독 눈에 띈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3-04-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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