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그 ‘박스’, 박 대통령이 구경은 하게 될까/이지운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그 ‘박스’, 박 대통령이 구경은 하게 될까/이지운 정치부 차장

입력 2013-06-28 00:00
업데이트 2013-06-2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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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운 정치부 차장
이지운 정치부 차장
베이징에 북한산 ‘박스’가 뿌려졌다고 한다. 북한의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지난 5월 베이징 방문을 마치고 평양으로 되돌아간 직후의 일이다. 고려항공이 실어날랐다는데, 족히 수백 박스는 되는 모양이다.

권력의 도시 베이징에는 가끔 ‘박스’가 뿌려질 때가 있긴 하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팔순을 맞아 회고록을 내고 그 비싸다는 1959년산 마오타이(茅台)주를 2병 한 세트씩 500박스를 돌린 적도 있다. 귀한 것은 대개 돌게 마련. 당시 이 술도 신세 진 사람, 센 사람 등에게로 돌고 돌았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갑을 구조 속으로 들어간 셈이다. 500박스는 아마도 5000명 이상의 손을 거쳐 갔을지 모른다. 지금도 누구 집 장식장에 보관돼 있을 수도 있다.

베이징에, 박스를, 북한이 돌렸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 전화를 돌려봤다. 공인된 중국 전문가들은 기억에 없다고들 한다. 분명 특별한 일이다. 하긴 최룡해의 방중 자체가 특수한 처지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일이 하나 있다. 박스가 아파트 편지함에 광고전단 꽃히듯, 무작위로 나돌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첫 문장에서 ‘뿌려졌다’고 한 것은 많은 양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뿐, 북한이 아무리 급해도 특별한 선물을 마구 살포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북한은 베이징에 특별한 선물을 수백 박스나 전달할 만큼 확실한 채널과 네트워크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도도하게 핵 주권을 떠벌리고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물밑에서는 이렇게 발버둥치고 있었다.

북한을 그렇게 다급하게 만든 건, 누구보다 중국이었다. 중국은 3차 핵실험 이후 남들 보라는 듯 북한을 냉대해 가며 일정한 신호를 보내왔다. 최룡해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의 만남에서 그것을 확인한 당사자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이 일에 한국을 많이 활용했다. 중국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의 덩위원(鄧聿文) 전 부편집장의 활동도 그 한 예다. 그는 ‘중국은 북한을 버려야 한다’는 글을 썼다가 해고된 뒤 한국에 와서 맹활약했다. 주요 일간지와 연쇄 인터뷰를 가졌으며 각종 세미나에 불려다니며 강연을 했다. 덩은 중국이 달라졌다는 점을 한국에 알리는 데 열심이었지만, 이는 동시에 북한에 대한 반복적이고 집중적인 시그널이기도 했다. 뒤 이은 한·중 의원 교류, 군사 교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국회의원에게, 고위 장성에게 중국은 ‘중·북 관계 별것 없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다. 한국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고, 북한은 이를 지겹도록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박스’는 이런 와중에 전달된 것이다.

중국도 이렇게 열심히 뛰었다. 북한보다 더 열심히. 사례가 넘쳐날 정도다. 북한은 물밑에서 중국의 요인을 상대로 움직였고, 중국은 한국의 요인과 학계, 언론을 움직였다. 이를 통해 북한과 서방세계로까지 작업의 영역을 확대했다. 장사로 치면 중국이 큰 이윤을 남긴 셈이다. 최대 이해당사자인 한국이 이 기간 놀고만 있었으랴만, 그 이윤이 궁금해진다. 활동 공간이 전통적 개념으로 ‘외교’의 영역에 그친 것은 아닌지. 아쉬운 일이다. 이제 중국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할 일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 박스. 분명 베이징의 실세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담겼을 텐데, 박 대통령과 수행단이 구경은 하게 될까.

jj@seoul.co.kr

2013-06-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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