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총리의 발언/안석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총리의 발언/안석 정책뉴스부 기자

입력 2013-08-02 00:00
업데이트 2013-08-0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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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2009년 대전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후 나오는 길에 ‘계란 세례’를 받았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던진 계란이었다. “제 고향인 충청도를 배반하는 것이 아니다. 진심을 믿어 달라”며 세종시 수정안의 당위성을 설명했지만, 성난 민심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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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 정책뉴스부 기자
안석 정책뉴스부 기자
애초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 전 총리에게 세종시 수정안을 전적으로 맡겼다. 정 전 총리도 줄곧 “내가 책임지겠다”며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갈 비판을 막았다. 결국 세종시 수정안은 이듬해 6월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고 한 달 뒤 정 전 총리는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의 말대로 정 전 총리는 세종시라는 십자가를 진 셈이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논쟁이 한창 뜨거울 당시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었다. 세종시 논란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자리였다. 그래서였을까. 지난달 23일 오찬을 겸한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세종청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정 총리의 발언은 예상보다 직설적이었고, 수위도 높았다. “멋만 실컷 부렸다” “실용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세종청사의 비효율성을 강한 톤으로 지적했다. “청사가 하늘에서 봐야 용이지 땅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도 했다. 공교롭게도 2007년 7월 말 세종신도시 부지조성 공사의 첫 삽을 뜬 지 정확히 6년 뒤에 나온 평가다.

심지어 신문 제목으로 세종청사가 ‘용’이 아닌 ‘뱀’이 됐다고 나올 만큼 절묘한 비유였고, 기자들 앞에서 세종청사의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지적한 것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는 평가도 나올 수는 있다. 최고위 공직자로서 세종청사를 비롯한 세종시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국정의 한 축을 책임지는 총리의 발언으로 표현 수위나 내용 등이 적절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것 같다. 우선 국무조정실 세종시 지원단과 안전행정부, 국토교통부 등 세종시가 불모지였을 때부터 먼저 와서 건물을 지었던 직원들이 정 총리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부터가 궁금하다. 어느 선진국에도 뒤지지 않는 청사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홍보활동도 행정부 2인자의 발언으로 결과적으로는 ‘빈말’이 됐다. 인간 중심, 자연친화적이라고 자랑하던 청사가 직사각형의 서울청사만도 못한 평을 들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투입된 수천억원의 예산도 결국 ‘멋만 실컷’ 부리려고 쓴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미 개청 1년을 넘어서면서 청사 건물뿐 아니라 주차난, 주택 문제 등 세종시의 비효율성이 이곳저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총리가 방관자처럼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업무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고 있다는 비난도 나왔지만 정 총리는 지난 3월 5일 세종시 전입을 마치고 명실상부한 ‘세종시민’이 됐다. 세종청사의 첫 총리인 정 총리가 훗날 역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는 세종시의 비효율을 실제로 어떻게 고쳤는지, 미래 패러다임에 대비해 국정과 행정 형태를 어떻게 바꿨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ccto@seoul.co.kr

2013-08-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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