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한국 속담에서 배우다/사사가세 유지 도쿄신문 서울지국장

[글로벌 시대] 한국 속담에서 배우다/사사가세 유지 도쿄신문 서울지국장

입력 2013-09-02 00:00
업데이트 201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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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뚝배기보다 장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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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가세 유지 도쿄신문 서울지국장
사사가세 유지 도쿄신문 서울지국장
부산의 명물인 곰장어 구이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산 채로, 기다란 모양 그대로 숯불에 올렸다. 꿈틀거리는 모습에 식욕이 떨어졌으나, 먹어 보니 이것이 예상 외의 맛이었다.

두꺼운 부분은 곱창구이 같고, 꼬리부분은 오돌오돌하고, 해산물 특유의 바다 향이 입안에 퍼져 갔다. 역시 겉모습보다 내용이 중요한 법,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다.

가느다란 쪽박에 밥 많이 담긴다고, 추가 주문까지 해서 충분하게 즐겼다. 곰장어 구이를 먹은 것은 말복 즈음. 삼계탕도 매우 좋아하지만, 곰장어 구이 역시 여름을 이겨내는 데 최고의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골에 가면 시골 풍습을 따르라는 속담도 실감했다.

장어구이를 먹었을 때의 일이다. 일본에서 장어라면 ‘가바야키’가 일반적이다. 도쿄 지방이라면 뼈를 발라낸 후 꼬치에 꿰어 찌고, 다 쪄지면 양념을 발라 굽는다. 주문 후에 요리를 시작하는 가게에서는 1시간 정도 기다리는 일도 있다. 부드럽고, 입에 넣으면 씹기 전에 부서질 듯한 식감을 만나게 될 때도 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이다.

반면에 한국의 장어구이는 속도감이 있고 와일드하다. 한국 분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장어구이는 뼈를 발라낸 후 그대로 숯불에 올린다. 아직 꼬리가 움직이고 있을 정도로 속도전으로 준비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먹을 때가 된다.

가게에 따라서는 소금만으로 맛을 내고, 양념은 개인 취향대로 바른다. 표면의 고소함, 씹는 재미가 있는 맛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둘러앉아 소주를 주고받으면서 왁자지껄하게 즐기는 것이 한국 스타일이다. 일본의 가바야키도 맛있지만, 한국의 장어구이 역시 갑을을 가리기 어렵다.

일본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기후나 환경도 비슷하기 때문에 공통적인 식재료도 많다. 서양 음식을 매일 먹기는 힘들지만, 한국 음식이라면 대환영이다. 같은 동아시아 나라로서 공유하는 생활습관이나 드라마, 문학 등 감동의 포인트는 다 셀 수 없을 지경이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문화의 가까움을 실감한다.

그러나 한편, 장어구이 요리법에 큰 차이가 있듯이 만남이 깊어짐에 따라 사고방식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팔방미인이라는 단어는 일본어에도 한국어에도 있다. 한국어에서는 여러 방면에 능력이 있는 사람을 칭찬하는 말이지만, 일본어에서는 누구에게든지 좋은 얼굴을 보이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뜻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일본과 한국은 닮은 점이 많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부지불식간에 상대방도 자신과 사고방식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언동을 상대방이 하는 순간 매우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며느리가 미우니 손자까지 밉다는 식으로 생각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둘은 닮았지만 다른 존재이다. 서로를 잘 알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국과 사귀어 가려고 한다.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라는 말도,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다. 아는 척하는 것은 이 정도로 해야겠다.

2013-09-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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