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4강 외교’ 감당할 수 있나?/김미경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4강 외교’ 감당할 수 있나?/김미경 국제부 차장

입력 2013-12-13 00:00
업데이트 2013-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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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국제부 차장
김미경 국제부 차장
한국 외교가에서는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개의 강대국을 의미하는 ‘4강(强)’이라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다. 33년간 외교관이었던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제 ‘4강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지정학적·역사적 배경 등으로 인해 이들 국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4강 외교가 중시되다 보니 외교부의 ‘베스트’ 외교관들이 이들 국가를 상대한다. 외교부 내 ‘워싱턴 스쿨’과 ‘차이나 스쿨’, ‘재팬 스쿨’ 등이 해당국 대사는 물론 장차관 등 고위직을 배출하며 승승장구하는 배경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4강 외교를 보면 착잡함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낀다. 최근 만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노무현 정부 이후 한·미 관계가 이렇게 나쁜 적이 없었다”며 “정부가 한·미 동맹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들만 골라서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 불발 사태로 곤욕을 치렀던 외교부는 미·일 간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에 대해 어정쩡한 반응으로 일관하며 ‘왕따’를 자초하고 있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은 정상회담 제안 등 ‘마음 사로잡기’(charm offensive) 전략으로 한국을 궁지에 몰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논리적으로 설득하지는 못하면서 “아베 (신조 총리)가 나쁘다”며 대일 강경외교만 고수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중 외교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순풍에 돛을 다는 듯했다. 미·일에 맞서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이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하다. 이에 한국은 중국과의 밀착 관계에 속도를 내면서 중국에 치우치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 그렇지만 중국은 박 대통령의 ‘라오펑유’(朋友·오랜 친구)가 아니었다. 중국이 일본을 겨냥하며 선포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CADIZ)에 이어도가 버젓이 포함됐고, 한국의 반발과 자체 방공식별구역(KADIZ) 확대에 강한 유감을 밝히며 어느새 힘의 논리로 한국을 누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방한한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박 대통령과 만나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측은 한·미 동맹 중요성을 강조한 발언이라고 해명했지만 한국의 친중 행보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한 전직 대사는 “한국 외교가 ‘동네 축구’처럼 이리저리 공만 쫓아다니다 여기저기서 뺨만 맞는다”며 “이러다가 중국과 일본, 중국과 미국이 갑자기 밀착하면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4강 외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북핵 외교도 남북 관계가 꽉 막히면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북핵만 남았다는 지적에 외교부 측은 “이란과 북한은 다르다”는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다.

기자의 이 같은 지적에 한 핵심 외교관은 대통령, ‘큰집’(청와대)과의 직접 소통 부재를 토로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과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해 4강 외교가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4강 스쿨 외교관들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좋은 자리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자신의 자리를 걸고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남은 4년간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chaplin7@seoul.co.kr

2013-12-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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