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주칼럼] 진정한 장애인 복지를 생각한다

[허남주칼럼] 진정한 장애인 복지를 생각한다

입력 2011-04-20 00:00
업데이트 2011-04-2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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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한살인 시각장애 1급 문호씨가 피부미용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지난 주말 치른 필기시험 점수가 좋았다며 5월에 있을 실기시험을 준비 중이다. 현재 그의 고민은 눈썹다듬기. 실기 시험 중 눈썹다듬기 항목에서 감점당할까봐 걱정이란다. 멀쩡하게 눈 뜨고도 제 눈썹다듬기란 쉽지 않은데 시각장애인이 눈썹 정리라니…. 이 청년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연습을 할 수 있게 내 눈썹을 내줘야 하나. 갑자기 내 눈앞마저 막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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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주 특임 논설위원
허남주 특임 논설위원
10여년 전 취재를 하다 만난 문호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뇌종양 수술을 받으면서 시신경을 잃었다. 그럼에도 친구들의 고민 상담까지 도맡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씩씩했다. 특수확대경과 보조기에 의존해 책을 눈앞에 바싹 들이대며 탐독한 끝에 한국사이버대학교 컴퓨터공학부에 수석입학했다. 정보처리산업기사 자격증도 땄다. 그렇게 문호씨의 소식은 늘 인간승리였고 감동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그는 ‘장애인용 직업’에 자신을 맞추는 중이다. “제가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죠. 잠깐 꿈은 접더라도….” 그는 컴퓨터 관련 일을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가 그에게 원하는 일이 있다면 타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적장애 3급인 아들을 위해 수도권지역에서 무공해농장을 경영하며 공동체 생활을 꿈꾸는 권은수(56)씨의 아들 준영(32)씨는 10년째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대형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청소일을 맡아 한다. 권씨는 “어른이 되면 누구나 힘들어도 일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아들이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찾았다. 한동안 준영씨는 출퇴근에 4시간이나 걸리는 직장을 다녀야 했고 아직도 월급은 80여만원이다. 상용근로자 평균의 30% 남짓한 액수라는 게 답답하다. 그래서 아들과 또 다른 장애인들에게 경제적 독립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권씨의 소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주례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복지가 일자리라는 대통령의 지적은 장애인과 가족에게는 가슴에 와 닿는 말일 것이다.

지난해 장애인 의무고용 사업체 2만 3249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장애인 고용률은 2.24%. 전년보다 0.07% 포인트 상승했고,지난 20년간 4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요즘 같은 불황에 멀쩡한 사람도 직장 구하기가 힘들다는데 괄목할 만한 성과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느끼는 취업 체감도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취업 장애인들은 단순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학력을 높여도 적성에 맞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직업을 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배울수록 직장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애써 배운 것을 모두 버리고 문호씨처럼 새 일을 찾아 나서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장애인 복지비용을 통칭하는 장애급여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0.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2%에 크게 못 미친다. 장애인 가구 월 평균소득 역시 181만 9000원으로 전국가구 평균(337만원)의 54%에 불과하다. 그래서 장애인 가족들은 가장 시급한 서비스로 경제적 지원을 꼽는다. 장애인은 어떤 사람인가. 질병과 사고 등으로 인한 중도 장애가 70%라고 한다. 선천적 장애가 19.3%인 점을 감안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정상인도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등록 장애인은 251만여명. 등록되지 않은 숫자까지 합치면 50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올 들어 정치권에서 보편적 복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장애인 복지가 맨 앞줄을 차지해야 한다고 본다. 장애인의 취업이 ‘인간승리’로 미화되는 나라가 어찌 선진국인가. 장애인이 일자리를 통해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 정의로운 사회다.

hhj@seoul.co.kr
2011-04-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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