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DMZ 평화공원에 남북 경협지구도 許하라

[구본영 칼럼] DMZ 평화공원에 남북 경협지구도 許하라

입력 2013-08-15 00:00
업데이트 2013-08-1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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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논설실장
구본영 논설실장
개성은 역사적으로 정치·군사 도시이자 상업 중심지였다. 지금이야 북한의 군사력이 밀집된 삼엄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개성 상인’들이 풍부한 물산을 거래하며 흥청거리던 때도 있었다. 고려의 도읍 개경에서 30여리 떨어진 예성강 하구의 국제무역항 벽란도엔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드나들지 않았는가.

이런 지정학적 양면성이 개성의 숙명일까. 개성공단이 4개월 넘게 가동을 멈췄다. 지난 4월 북한의 일방적 폐쇄 조치 이후 어제 7차 남북 실무회담까지 이어오며 공단 정상화를 향한 극심한 산고를 겪었다. 남북 경제협력을 위해 조성한 공단이 정치적 ‘밀당’의 현장이 되고 있는 것은 이만저만 아이러니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개성공단은 지난 2003년 첫 삽을 뜰 때부터 불안정한 지반 위에서 출발했다. 남의 자본과 기술, 북의 저임금 노동력은 분명 경쟁력 있는 생산요소다. 하지만 북쪽 근로자들이 남쪽 시장경제의 풍요와 자유로운 공기를 접하면서 생길 세습체제의 동요 가능성은 북한정권에는 공포의 시나리오였다. 우리 측 일부 인사들은 개성공단이 정치를 배제한, 경제적 상생지역으로만 가동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개성공단은 태생적으로 정경 분리가 작동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극심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선 남한과 외부 세계에 문을 열어야 하나, 그럴 때마다 체제 불안을 걱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북한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입주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윤 동기로 진출했지만, 북한의 몽니로 공단이 파행을 겪게 되면 경제논리 대신 정부에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는 역설이 상례화되지 않았는가.

개성공단은 앞으로도 온갖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혁·개방 울렁증’을 지닌 김정은과 북 군부가 북한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 초코파이를 저어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한 그럴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개성공단의 대안으로 ‘나들섬 프로젝트’를 공약한 적이 있다. 임진강과 예성강이 서해로 유입되는 길목인 강화도 북동쪽 하구 인공섬에 남북경협단지를 만드는 구상이었다. 북한 근로자를 남한으로 출퇴근시켜 북한당국의 ‘갑(甲)질’을 막겠다는, 기업인 출신다운 발상이었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호응할 리가 없었다. 노무현 정부 때 김정일이 서해 공동어로구역에 적극적 관심을 보였던 것과 극명히 대비된다.

하기야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그 남쪽에 북한이 자의적으로 획정한 해상경계선 사이의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선 최상의 선택이었을 법하다. 어민과 해군의 구분조차 모호한 북한으로선 체제에 독일 수도 있는, 달콤한 남쪽 초코파이를 걱정하지 않고 맘껏 ‘어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만일 남한에서는 이를 수용했다면 NLL 포기 논란이란 불씨가 더 큰 불길로 번졌겠지만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번 방미 때 제시한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구상이 주목된다. 아직 마스터플랜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DMZ 내에 ▲생태환경 및 문화체험 공간 ▲남북 이산가족 만남의 광장 ▲국제회의장 및 전시공간 등을 조성하는 청사진이 그 요체다. 이왕이면 여기에다 남북 경제협력지구를 추가하면 어떨까 싶다. 신재생 에너지 사업단지나 물류 및 농업단지 등을 포함한, 업그레이드 버전의 개성공단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개성공단이나 이명박 정부의 나들섬 프로젝트보다 장기적으로 보면 더 현실성 있는 비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최악의 식량 및 에너지난을 감안하면 북한도 구미가 당길 수 있는 카드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남북 접촉면 확대에 따른 주민 동요 가능성에 대한 북한당국의 불안감은 덜 수 있지 않겠는가.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에 진취적으로 나설 의지가 있다면 ‘DMZ 공단’을 제안해 볼 일이다. 물론 성사 여부는 북한의 선택에 달려 있겠지만.

kby7@seoul.co.kr

2013-08-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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