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 게으른 뇌/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2030 세대] 게으른 뇌/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입력 2021-12-16 20:18
업데이트 2021-12-17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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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쉬워 보이는 것은 어렵고 어려워 보이는 것은 쉽다. 독일의 컴퓨터 과학자 유르겐 슈미트후버는 ‘단순한 원칙이 아름다움, 새로움, 놀라움, 흥미로움, 관심, 호기심, 창의성, 예술, 과학, 음악, 농담의 본질을 설명한다’라는 긴 부제목의 논문을 썼다. 논문은 우리의 학습 방식, 욕망, 삶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핵심은 ‘압축’이다. 인간의 경험은 다양하고 연관 없이 흩어져 있다. 인간은 혼란스러운 경험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서 ‘압축’을 할 수 있다. 해는 매일 뜨기 때문에 ‘낮’이라는 개념을 만든다. 뉴턴은 간단한 공식에 수많은 현상들을 ‘압축’했다. 연필이 왜 바닥으로 떨어지는지. 하늘에서 행성은 궤도를 어떻게 그리는지. 뉴턴의 이론 밖의 현상들을 아인슈타인이 또 ‘압축’했다. 상대성 이론이다.

‘압축’하며 지난 경험을 정리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한다. 지능이 높은 동물이라면 자연스럽게 ‘압축’을 추구하게 된다. 대칭이 있는 얼굴, 단순한 비율을 가진 얼굴이 아름답다. ‘압축’하기 쉽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얼굴도 기존에 익숙한 얼굴을 모아 만든 ‘원형’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을수록 아름답다. 슈미트후버는 우리가 ‘게으른 뇌’를 가졌다 한다. 뇌는 간결한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절약하는 정보를 선호한다.

그런데 인간의 뇌가 ‘지나치게’ 게으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인지 심리학자 도널드 호프먼이다. 호프먼은 인간의 뇌가 현실을 그대로 인식하기보다는 인간이 먹고 살아남는 데에 최적화돼 있다고 보았다. 생존과 무관한 것은 뇌는 무시하려 하고, 생존에만 집중하도록 뇌는 우리를 속인다.

보이는 현실은 왜곡투성이인지도 모른다. 호주에 보석딱정벌레라는 곤충이 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금갈색 곤충이다. 암컷은 날지 못한다. 수컷은 날아다니며 역시나 암컷을 찾아낸다. 수천 년 혹은 수억 년 동안 그렇게 반짝이는 금갈색 암컷들을 좇으며 살았다.

어느 날 갈색의 빈 맥주병을 보고 수컷들은 깜짝 놀란다. 암컷을 그만 잊는다. 반짝이는 유리병에 붙어(거대한 암컷으로 착각해) 여위어 가다 굶어 죽는다. 맥주병과의 금지된 사랑 때문에 보석딱정벌레는 멸종할 뻔한다. 호주 맥주 회사들은 이 때문에 병 디자인을 바꾸었다.

호프먼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생물보다는 현실을 왜곡하는 생물이 생존 확률이 더 높았다. 보석딱정벌레는 갈색이며 올록볼록한 물체는 무조건 열망하도록 진화했다.

인간이 보는 세상도 ‘가짜’가 아닌가 하고 많은 철학자들이 주장했다. 왜 플라톤이 우리가 ‘진짜 세상’을 인식 못하고 있고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는지 이제 다시 설명할 수 있다. 욕망은 뇌가 수억 년의 진화를 거치며 우리에게 보내는 가장 강한 메시지이다. 우리를 속이려면 욕망으로 속일 것이다. 금갈색빛의 욕망이다.
2021-12-1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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