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우 딴생각] 내 인생의 챔피언

[홍석우 딴생각] 내 인생의 챔피언

입력 2013-09-16 00:00
업데이트 201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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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우 성균관대 석좌교수·전 지식경제부장관
홍석우 성균관대 석좌교수·전 지식경제부장관
“3년 전 일입니다. 중 3이던 딸아이가 휴대전화가 어디에 숨었는지 못 찾겠다면서 자기 휴대전화로 전화를 해 보랍니다. 마침 벨이 근처에서 울리기에 휴대전화를 찾아 들면서 보니 제 호칭이 ‘왕짜증’이라고 돼 있는 겁니다. 아침에 딸에게 일어나라고 깨우면서 짜증을 내기는 했지만 막상 ‘왕짜증’이라는 말을 들으니 당황스러웠습니다. 고등학생이던 아들은 저를 어떻게 부를까 궁금해져서 비슷한 방법으로 알아봤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이번에 제 호칭은 ‘그 인간’이었습니다. ‘왕짜증’만 해도 애교로 참겠는데 ‘그 인간’이라는 호칭을 보고 나니 절망감이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을 불러서 야단을 치려다가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내가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지난해 부하 직원에게 들은 얘기다. 자식들로부터 쇼크를 받은 후 이 직원은 엄청나게 반성을 했다고 한다. 건성건성으로 들어주던 아이들의 얘기를 진심을 다해 듣고 함께 고민하는 노력을 했다. 아이들이 학업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에는 동네 놀이터로 데리고 가서 자신의 경험도 얘기해 주고 등도 두드려 주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몇 년 후 우연한 기회에 딸아이가 보여 주는 휴대전화 속 자신의 호칭이 이렇게 변해 있더란다. ‘내 인생의 챔피언.’

신문에서 읽은 글이다. 프린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어느 동네 의사 선생님이 하루 꼬박 처방전을 손으로 썼다. 그런데 오랜만에 처방전을 손으로 쓰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깨달았다고 한다. “환자보관용 처방전은 거의 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늘 줄여서만 부르던 약의 이름을 정확히 알게 되었고, 약물 하나하나를 써 가면서 옆에 앉아 있는 환자에게 그 효과를 설명하는 서비스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처방이 과하거나 부족하지는 않은지를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편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때로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을 바라볼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장관님, 제가 광역선도 사업에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출하라는 양식이 너무 많고 까다로워서 중소기업이 작성하기에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서류가 복잡해서 지원도 한번 제대로 못 해 보게 생겼습니다. 좀 쉽게 고쳐 주시면 안될까요?” 지난해 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모시고 했던 간담회 자리에서 어느 기업인이 한 얘기다. 대통령 앞이라 확실한 답변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중소기업청장 시절에도 유사한 질문이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직접 양식을 작성해 보고 개선점이 있는지 챙겨 보겠다고 답을 했다. 직원들에게 내가 직접 작성해 볼 테니 관련 서류를 준비해 놓으라 하고는 바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그리고 출장을 다녀와 담당 직원들에게 들은 답변은 이러했다. “장관님께서 직접 작성하시는 수고를 하도록 할 수가 없어 저희가 작성을 해 보았습니다. 금년 봄부터 광역선도 사업을 비롯한 유사사업 신청 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의 분량을 반 이하로 줄이도록 개선안을 마련했습니다. 담당 직원들이 매년 절차 간소화를 위해 회의도 하는 등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눈으로만 방안을 강구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서류 하나하나를 직접 작성해 보았더니 개선점이 많이 발견됐습니다.”

나의 공무원 생활 30년을 돌아보면 기업인들의 속이 많이 탔을 것 같다. 나를 ‘내 인생의 챔피언’이라고 생각했을 기업인이 과연 한 명이나 있었을까. 후배 공직자들은 행정을 하면서 생각에 머물지 말고 직접 경험을 통해 행동에 옮김으로써 국민들로부터 ‘내 인생의 챔피언’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철의 여인’이라는 영화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생각을 여러 번 하면 말이 되고, 말을 여러 번 하면 행동이 되고, 그런 식으로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이 되고, 인격은 운명이 된다. 그러니 생각이 곧 운명이 된다.”

2013-09-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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