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횡재세, 횡포세

[세종로의 아침] 횡재세, 횡포세

장형우 기자
장형우 기자
입력 2024-05-14 04:02
업데이트 2024-05-1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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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이 22대 국회의 시작과 동시에 다시 횡재세 입법을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과 정유사 등을 대상으로 한 횡재세 부과는 21대 국회에서 이중과세 등 위헌 논란으로 정무위에서 주저앉았다. 당시 논란이 됐던 부분에 대한 해결책은 딱히 보이지 않고, 이번엔 3년 한시적 특별법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횡재세는 은행과 정유사가 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을 얻을 경우 초과 이익에 대해 추가로 징수하는 ‘초과이윤세’다. 초과 이익이 전쟁, 기근 등 외부 요인에 따른 ‘횡재’의 성격이 짙을 때 징수한다고 해서 횡재세라 부른다. 코로나19 팬데믹,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에너지 위기 상황이 발생하자 석유·가스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게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들 기업이 횡재로 얻은 이익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을 사회복지 등 분배 정책에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기업의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란 점에서 일견 타당한 것도 같다. 하지만 적용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다. 우선 이 세제를 시행 중인 영국과 인도는 석유회사 가운데 원유를 생산(채굴)하는 업체에만 횡재세를 물리고 있다. 생산 비용은 똑같은데 국제 시장에서 원유의 거래 가격이 급등해 평소보다 많은 이익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과 인도도 원유를 사 와서 정제한 뒤 휘발유, 경유 등의 석유제품으로 시장에 판매하는 정유사에 대해선 횡재세를 물리지 않는다. 이익이 늘어도 원인이 유가 상승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 4사는 원유 시추를 통해 유가 상승의 이득을 직접적으로 누리는 해외 석유회사들과 달리 모두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판매하고 있다. 횡재세를 물릴 수 있는 사업구조가 아니다. 동, 서, 남해 어딘가에 이들 정유 4사가 꼭꼭 숨겨 놓고, 국제 유가가 오를 때마다 원유를 뽑아 쓰는 대형 유전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들의 이윤이 좋아진다. 하지만 이건 사전에 이뤄지는 원유 수입 계약의 시기와 유가 상승의 시차 때문에 발생하는 일시적 현상이다. 실제로 횡재세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2022년 정유 4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치인 약 14조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는 약 5조원에 그쳤다. 고유가가 길어지면 결국 고비용으로 이익은 줄어든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일시적 초과이윤에 대해 세금을 물린다면, 반대로 유가 하락에 따른 일시적 손실에 대해선 보조금 지급 등 보전책이 있어야 앞뒤가 맞는다. 이건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한 비판 논리와 같다. 또 정부는 2021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유류세 인하 조치를 9차례 연장했다. 그런데 신중한 검토 없이 정유사에 횡재세를 물리면 도입 취지와는 달리 최종 소비자의 부담이 커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

무엇보다 횡재세는 세수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 유가가 오르면 얼마 동안은 많이 걷히겠지만, 반대의 경우엔 아예 한 푼도 못 걷을 수 있다.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정부가 조세지출 계획을 짜기 어렵다. 정부에도 횡재와 같아서 쌈짓돈처럼 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세금은 공동의 우물과 같다. 마을 인구의 증가에 따라 우물도 점진적으로 늘어야 한다. 일시적 필요로 마구 파 버리면 지하수 고갈로 우물은 말라 버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국민은 세금 더 걷으라고 야당에 더 많은 표를 준 게 아니다. 무리한 입법은 횡재세가 아니라 ‘횡포세’가 될 수 있다.

장형우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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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우 산업부 차장
장형우 산업부 차장
2024-05-1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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