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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그림책 읽는 어른/위원석 딸기책방 대표

[문화마당] 그림책 읽는 어른/위원석 딸기책방 대표

입력 2022-01-26 20:14
업데이트 2022-01-2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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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석 딸기책방 대표
위원석 딸기책방 대표
드르륵. 푸른색 그림책방의 낡은 미닫이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인사를 주고받기 전의 찰나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자판을 두드리던 책방지기의 귀가 쫑긋하며 방문객의 외모를 상상한다. 이곳이 그림책방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손님은 엄마와 어린이지만, 그럴 확률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림책방은 의외로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강화도로 짧은 여행 온 스무 살 단짝 친구 둘은 딸기책방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마주한다. 책장 사이에서 어릴 때 즐겨 보던 그림책을 찾아낼 때마다 그 시절 동무를 만난 것처럼 반색하다가 최근에 나온 그림책을 뒤적이며 멋진 책을 찾았노라 서로에게 자랑하기도 한다. 두 친구는 그림책 한 권씩을 골라 서로에게 선물하고 책방 문을 나선다.

잘 차려입은 젊은 연인도 스르륵 책방 문을 열었다. 문턱을 넘자마자 그림책을 손에 쥔 여자 친구와 달리 남자 친구는 귀여운 책방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 두리번거린다. 그것도 잠시, 어느새 그도 책장 앞에 서서 그림책을 뒤적인다.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각자가 찾은 감명 깊은 그림책 구절을 서로에게 읽어 준다. 한참을 나란히 앉아 그림책을 넘기며 사랑, 우정, 인생, 젊음 같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연인은 책방에서 함께 찾아낸 보물 같은 그림책 몇 권을 골라 가며 다시 오겠노라 인사를 한다.

어르신 네 분이 책방을 찾아왔다. 들어오시자 느긋하게 책방지기에게 말을 건넨다. 그림책 읽기 모임을 함께하는 동료들이란다. 종종 전국에 있는 그림책방을 찾아 나선다고 했다. 집중력도 시력도 예전 같지 않은 터에 그림책을 함께 읽는 것은 더 없이 좋은 취미란다. 글과 그림이 함께 있어 좋고, 글이 시처럼 응축돼 있어 좋고, 조금 읽고도 많이 생각하고 오래 대화할 수 있으니 좋단다.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그림책들을 사 가면서 책방 오래오래 하라는 덕담을 남기고 떠나신다.

그림책을 읽는 어른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림책은 ‘어린이가 읽는 책’이라는 오래된 생각은 바꾸는 것이 좋겠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그림책은 ‘어린이도 읽을 수 있는 책’일 뿐 ‘0세에서 100세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책이었다.

다만 우리의 그림책 역사가 짧기에 2030 젊은 세대를 제외한 대부분은 어른이 돼서야 제대로 만들어진 그림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림책을 제대로 즐기고 이해하는 경험이 부족했고 자녀를 위해 읽어 줄 때가 아니라면 굳이 그림책을 펼칠 이유도 없었다. 반면 아기 때부터 양질의 그림책을 읽으며 성장한 젊은 세대는 그림책 한 권이 주는 감동과 재미를 잘 알고 있고, 성인이 돼서도 자연스레 그림책 신간 코너를 찾아 자신을 위해 그림책 한 권을 고르는 것이다.

오늘이라도 동네 책방에 들러 그림책 한 권을 골라 펼쳐 보라. 한 권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에서 10분 남짓이겠지만 그 한 권을 보는 사이 깔깔 웃는 사람, 눈물 흘리는 사람이 많다. 외울 수도 있을 것처럼 적은 글자의 책에 굳이 값을 치르고 집에 데려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림책을 읽으며 얻게 되는 뜻밖의 소득은 ‘내 안의 어린이’와 만나는 것이다. 숨 가쁘게 살아오느라 마음속 한편에 치워 놓았던 ‘내 안의 어린이’,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던 나의 동심과 만나 그림책을 통해 화해한다는 것은 멋진 일 아닐까? 그 동심을 알맹이로 놓고 나이테처럼 한 칸씩 동심원을 넓혀 간다면 지금보다 단단한 삶, 더 좋은 사람이 돼 갈 수 있지 않을까?
2022-01-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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