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나의 오솔길/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나의 오솔길/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6-10-02 18:02
업데이트 2016-10-0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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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나기를 길눈이 어둡다. 내비게이션을 무시하는 버릇은 오히려 그런 탓이다. 기계한테 기대 버릇했다가는 평생 길치로 살까봐서다. 차를 몰아 한 시간이 걸리는 출근길을 다니는 길만 고집하기를 몇 년째. 미련하다는 핀잔을 듣다 못해 내비게이션을 켜봤다.

그 재미는 며칠을 못 갔다. 나흘째 아침에도 기계는 콩 놔라 팥 놔라. 그러든 말든 나도 모르게 차는 다녔던 길로 접어들었다. 몸에 끼는 정장 대신 고무줄 바지를 입었을 때의 평온.

고집으로 다니는 길에는 지붕 낮은 집들이 아직 버티고 있다. 마당 너머로 텃밭들을 내놓고는 철철이 다른 풋것들을 심고 뽑는다. 녹슨 대문집 할머니는 어제 집앞의 빼빼 마른 배나무를 손봤고. 전봇대 옆집 아주머니는 이슬을 털고 배추를 솎았고. 동네사람들을 나 혼자서만 오래 사귀고 있다. 아스팔트가 덮치지 않은 길켠에는 팔만 뻗으면 잡히는 생명들이 많다. 고개 꺾은 강아지풀, 어느 집에서 옮겨 심었을 과꽃.

세상이 한입으로 외쳐도 누군가에겐 정답 아닌 것이 있다. 아침마다 마음의 비늘을 세워주는 영양제. 나만의 오솔길은 내비게이션에 없다. 아무도 모른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6-10-0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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