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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꿈꿀 권리, 희생할 의무/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꿈꿀 권리, 희생할 의무/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입력 2013-01-07 00:00
업데이트 2013-01-0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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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199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인이 외국에 가면 일본 아니면 중국에서 왔느냐고 물어보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왔노라고, 한국은 한글이라는 고유한 문자를 사용한다고 말하면, 푸른 눈의 서양인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그러던 그들이 싸이의 말춤에 열광하면서 2013년 새해를 맞이하였다. 텔레비전으로 그 광경을 보면서 참으로 뿌듯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보수니 진보니 하면서 편을 갈라 싸움질을 해대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자유다. 문제는 자신의 의견과는 다른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분법적 편 가르기에 빠진 이들에 따르면, 한국사회 구성원은 ‘보수 골통’ 아니면 ‘좌파 빨갱이’뿐이다. ‘골통’과 ‘빨갱이’들이 이리 떼처럼 무리를 지어 상대방을 잡아 먹기 위해 섬뜩한 저주와 욕설을 퍼붓는다. 정치인들은 그 싸움질을 부채질해서 이득을 얻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싸움질을 말려야 할 지식인마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개흙 밭에 뛰어들어 삿대질을 해대고 있다.

지금, 이 싸움질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과 사이비 지식인들에 의해 조장된 세대 간의 대립과 분열로 변질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50대 기성 세대는 젊은 세대의 앞길을 막는 ‘보수 골통’으로 낙인찍혔다.

어느 시대든 세대 간의 갈등은 항상 존재한다.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생각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성 세대는 젊은 시절 70~80년대의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자유의 억압과 파행적인 산업화를 경험했다. 당시 젊은이들은 김지하 시인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피 터지게 부르면서 독재 타도를 외쳤다. 그 외침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당시 기성 세대의 피땀에 힘입은 바 크다.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젊은이들은 민주와 자유를 꿈꾸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애쓴 것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정보사회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가치관은 기성 세대의 가치관과 다를 수밖에 없다. 아마도 젊은 세대는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면서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이들이 그런 꿈을 꿀 수 있기까지는 그 밑바탕에 민주와 자유를 쟁취한 지금의 기성 세대의 고투가 깔려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처럼 세대 간의 갈등은 늘 있지만, 그러나 그 갈등은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창조적 원동력이 되어 왔다. 세대 간의 갈등의 밑바탕에는 젊은 세대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기성 세대의 자기희생 정신이 깔려 있다. 그런데 지금 불순한 정치적 의도로 조장된 세대 간의 갈등은 창조적 변용을 위한 갈등이 아니라, 공멸을 초래할 극한의 대립과 분열로 변질되고 있다. 그로 인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화해 불가능한 간극이 자리잡으려 한다.

사회 여러 측면에서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당연히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양성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절대화해서 그것과 부합하지 않는 생각을 무조건 ‘적’ 내지 ‘악’으로 매도하는 일이 더 이상 조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세대마다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고, 또한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각기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열린 자세로 상대방의 입장과 가치관을 존중하면서 공생할 공유 분모를 모색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루는 윤흥길의 소설 ‘장마’에는 전사한 국군 아들 때문에 인민군에게 저주를 퍼붓는 외할머니, 그리고 빨치산 아들을 둔 할머니가 등장한다. 두 할머니는 자식의 처지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러다가 빨치산 아들의 혼백인 듯한 구렁이가 집에 나타나자 할머니는 혼절하고, 외할머니가 그 구렁이를 달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할머니는 화해한다. 2013년 계사년의 뱀이 ‘장마’의 구렁이처럼 화해와 소통의 물꼬를 틔워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3-01-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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