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정부조직 개편과 국민이 원하는 것/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열린세상] 정부조직 개편과 국민이 원하는 것/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입력 2013-03-12 00:00
수정 2013-03-1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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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는 2000년도에 제작된 영국 영화이다. 멜 깁슨과 헬렌 헌트가 주연을 맡은 이 코미디 영화는 2011년에 ‘아지여인심’(나는 여인의 마음을 안다)이라는 제목으로 중국에서 다시 제작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한때 잘나가던 마초 성향의 광고기획자인 닉이 경쟁사 출신의 여성 달시에게 승진의 기회를 빼앗기게 되자, 강력한 소비력을 가진 여성들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다가 우연한 사고로 여자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생기는 일들을 유쾌하게 다루고 있다.

여성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아는 것이 광고기획자의 기본적인 자질인 것처럼,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정치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에도 정부조직 개편을 두고 국회에서 여와 야가 대립하며 새 정부의 정상적인 출범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은 기본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정치권이 국민이 원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이 원하는 바만 고집하며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박근혜 대통령의 준비 부족과 아집이 가장 큰 문제이다. 박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임을 강조하며 창조경제를 새로운 정부의 가치로 내세웠지만 창조경제의 근거와 실체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특히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기술(ICT) 전담 부처를 신설하는 대신 이 둘을 합친 미래창조과학부를 창조경제의 핵심 부서로 제안했지만 그 필요성과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김종훈씨를 미래창조과학부의 장관으로 내정하면서도 왜 김종훈인가를 밝히지 않아 결국 김종훈씨가 이런저런 논란에 시달리다가 청문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마음만 앞선 채 철저한 준비 없이 자신의 철학만을 고집한 결과 유례 없는 식물정부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둘째,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무기력함이 또 하나의 원인이다. 새누리당에는 많은 의원들이 있으나 막상 과학기술과 ICT를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몇몇 전문가들도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방송 문제에 대한 식견은 상당히 부족하다. 결국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고집과 야당의 몽니 사이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셋째,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통합당은 선거 결과에 대한 반성이나 승자에 대한 예우도 없이 구태의연한 주장으로 돌아갔다. 방송의 공정성이 특별하게 강조되는 영역은 공영방송 등 일부에 불과한데도 방송의 산업성은 무시한 채 공공성 논리에 빠져 있다. 또한 공영방송을 제외한 상업방송은 모두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의 원칙에 따르는 것이 수평규제의 방향성이지만 민주통합당은 방송에 칸막이식 규제 개념을 적용하여 방송 규제를 나누고 심지어는 주파수 정책까지 쪼개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넷째, 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채 자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야당의 주장에 동조하는 일부 보수언론의 이기적인 행태도 비난을 면할 수는 없다.

정부조직 개편이 계속 늦어지면 결국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된다. 즉, 민생문제는 외면을 받고 관련 업계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교황을 선출할 때까지 성 베드로 성당에 추기경들을 가두어 두는 콘클라베처럼 여와 야가 정부조직개편안에 합의할 때까지 국회에 계속 머물게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독임제가 방송의 공공성을 해칠 것이라는 민주통합당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민주통합당이 추천하게 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는 모두 국민이 원하는 것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아지국민심’(나는 국민의 마음을 안다)의 자세로 돌아가 정부조직 개편을 마무리해야 한다. 최악의 나눠 먹기식 조직개편만은 막아야 하며 더 이상의 시간 낭비도 피해야 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국민은 참을 만큼 참았다.

2013-03-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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