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그린 데탕트는 유엔을 통하여/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그린 데탕트는 유엔을 통하여/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입력 2013-04-04 00:00
업데이트 2013-04-04 00:2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박근혜 정부의 출범에 즈음한 북한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내부 단속용이라는 견해가 많지만, 북한은 한반도는 물론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언동을 일삼고 있다. 관련 국가의 정권 교체기에 핵 실험을 강행하는가 하면, 전쟁 위기를 연상케 하는 1호 전투근무 태세를 발동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는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좌초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강조했듯이 정책의 틀로서, 북한의 상황에 따라 포기되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면서 진행되는 것이란 점에서 앞으로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적 지원을 기본으로 해 농업·조림 등 낮은 수준의 경제 협력은 물론 교통·통신 등 대규모 인프라 구축에 관한 협력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통해 통일을 가능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과 북이 공유하는 생태 환경을 공동으로 보전하고, 이 과정에서 북한에 필요한 다양한 도움을 주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번영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 간의 녹색협력을 통한 ‘그린 데탕트’(Green Detente)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남북 간의 녹색협력은 추진 과정에서 북한의 핵과 같은 민감한 문제들과의 상호 연관성을 고려하면서, 최소한의 비용 부담으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에 고려해 온 북한 조림사업의 추진, 분쟁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생태 공원화하는 것,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한 대비와 같이 더없이 좋은 협력 아이디어들을 놓고 북한의 이슈에 대한 민감성, 성과 창출 가능성, 비용 효과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당장 환경과 생태의 위험이 크지 않은 국경 지역에서의 녹색협력은 북한이 민감해하는 그들의 주권에 대한 간접적인 위협으로 비쳐질 수 있으므로 상당한 인내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조림사업은 북한의 환경 개선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지만, 추진 과정에서 우리에게 지나치게 비용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혹시 발생할 수도 있는 백두산 화산 폭발로 인한 인근 국가의 피해 예방을 위한 공동 대응은, 북한의 역내 국가에 대한 환경 책임 부담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으로 인해 북한이 소극적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의 녹색협력을 통한 그린 데탕트는 유엔을 중심으로 한 다자 협력체의 추진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동북아 지역에는 우리가 그린 데탕트 맥락에서 활용이 가능한 다자 협력체가 존재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과 지구환경기금(GEF)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황해광역생태계프로젝트(YSLME Project)가 좋은 예의 하나이다. 이는 지구 사회에서 가장 큰 환경 오염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황해지역의 해양환경 보호와 민감한 불법 조업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기 위해 유엔과 역내 관련 국가가 참여하는 협력 사업이다. 앞으로 수년 후면 동북아 지역의 중요한 국제기구가 될 황해위원회를 출범시키는 것을 사업의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다. 유엔은 이 협력 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해 지난 5년간 200억원 이상을 지원했고, 우리나라만 해도 외교부, 해양수산부, 통일부 등 관련 부처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 협력체에 참여할 경우 주어지는 유엔으로부터의 다양한 혜택을 고려해 북한 정부는 최근 공식 참여 의지를 강하게 보여 왔다. 현재는 북한의 핵 문제로 인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정으로 유엔 협력체에 공식 참여하기가 어렵지만, 핵 관련 상황이 개선되면 북한의 참여는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동북아에서 북한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다자 체제로서 이 지역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면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도 도움을 주는 중요한 선례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린 데탕트를 통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 답은 유엔의 활용에 있다.

2013-04-04 30면
많이 본 뉴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