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복지예산 확보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한다/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복지예산 확보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한다/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13-11-26 00:00
업데이트 2013-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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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상당한 규모로 지방에서 사업하시는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이분에게 중학교 다니는 아들이 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더니 자신은 어차피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서 부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가 막힌 아버지가 혼을 내고는 자기 사업은 사회에 기부할 것이고 아들 너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으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단다. 이런 아버지의 선언으로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조금 공부를 하는 듯했는데, 아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겨우 중학생인데도 항상 콜택시를 불러 타고 다니고 친구들을 데리고 비싼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주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다시 아들에게 왜 그렇게 돈을 낭비하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어차피 물려받지 못할 돈인데 실컷 써보려고 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맹랑한 중학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단순히 맹랑한 중학생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상속세와 관련한 우리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돼 씁쓸하기도 하다.

심지어 중학생도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게 된다면 이런 엉뚱한 발상을 하게 되는데, 실제로 높은 세율의 상속세가 성인들에게 부과되면 이를 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꼼수를 부리게 될지 짐작할 수 있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많이 인용되는 사례가 유럽의 창문세이다. 과거 영국에서는 창문이 6개를 넘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는 세금을 부과하였다고 한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창문의 폭에 따라서 세금을 부과하였다고 한다. 아마 당시 영국의 왕과 프랑스의 왕은 창문에 세금을 부과하여 세금 수입을 올림으로써 국가의 지출을 충당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 왕과 프랑스 왕이 짐작하지 못했던 것은 국민들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영국의 국민들은 창문세가 부과되자 기존의 창문을 모두 벽돌로 막아서 창문 없는 집을 만들었고, 프랑스의 국민들은 가로의 폭은 아주 좁고 세로로만 긴 창문을 만들든지, 아니면 다른 창문을 모두 없애고 출입문에 커다란 창을 만들어 창이 아니고 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창문세를 피하려고 낮에도 깜깜한 방에 살면서 정신적 우울증과 곰팡이에 시달렸던 국민들의 고통은 논외로 하더라도 실제로 이러한 창문세를 통해서 당시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원래 목적한 세금 수입을 올렸을 것 같지는 않다.

정치권에서 항상 주장하는 이야기가 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여 정부의 조세 수입을 증가시키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인들의 주장은 정말 탁상공론에 불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속세율을 높여 조세를 더 거두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중학생의 머리로도 생각할 수 있듯이 어차피 상속세금으로 나갈 돈이라고 생각하고 죽기 전에 모두 써버리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정부의 조세 수입은 생각만큼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창문이 많은 사람이 더 부자일 테니 창문의 숫자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영국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영국에 100만개 창문이 있고 창문 1개에 1만원의 세금을 부과한다면 얼핏 100억원의 수입이 기대될 것이지만, 곧 국민들이 창문을 막아 창문의 숫자가 20만개로 줄어버리면 수입은 100억원이 아니라 20억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막대한 지출이 소요되는 복지 예산을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둬 충당한다는 계획은 너무도 현실성이 없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놓고 아무리 가능하다고 해도 몇 년이 지나면 온갖 방법으로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 예산 확보의 더 큰 문제는 혹시 경제가 나빠지면 세금은 확실히 덜 걷힐 것이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국민들이 늘어나 복지 예산은 더 들어갈 것이라는 점이다.

부자들에게만 세금을 거둬 복지를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은 정말 비현실적인 말이다. 현재 10%인 소비세를 더 올려서 전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는 방법으로 복지를 추진하든지, 아니면 복지 정책을 대폭 축소하는 방법뿐이 아닌가 생각된다.

부자들에게만 세금을 거둬 복지를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은 정말 비현실적인 말이다. 현재 10%인 소비세를 더 올려서 전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는 방법으로 복지를 추진하든지, 아니면 복지 정책을 대폭 축소하는 방법뿐이 아닌가 생각된다.

2013-11-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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