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혁신금융엔 금융혁신이 얼마만큼 필요한가/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혁신금융엔 금융혁신이 얼마만큼 필요한가/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입력 2019-04-09 17:30
업데이트 2019-04-10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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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4차 산업혁명의 시대, 혁신의 시대다. 침체된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도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성장을 위해선 금융의 역할도 중요하다. 대통령부터 앞장서 “금융이라는 동맥이 잘 뚫려 있어야 혁신의 심장이 쉬지 않고 고동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혁신금융은 중요하고 꼭 필요한데, 그럼 금융혁신은 얼마나 필요할까? 이 두 개의 용어는 혁신과 금융의 순서만 바꿔 조합한 것이어서 거의 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의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혁신금융은 벤처나 혁신기업의 혁신활동에 자금, 금융서비스를 공급하는 것(innovation financing 또는 finance)이다. 반면 금융혁신은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기존의 금융서비스더라도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즉 금융 부문의 혁신(financial innovation)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 전반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한 혁신금융이다. 금융 부문을 혁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 전체의 활력이 더 시급하지 않겠는가. 새 금융이든, 헌 금융이든 기업의 혁신 활동을 활발하게 해주고 일자리를 많이 늘려 주면 될 터다.

문제는 기존의 금융 시스템, 금융 서비스로는 혁신금융이 제대로 공급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금융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행들은 여전히 부동산 담보와 과거 실적 위주의 여신 관행을 일삼고 있다. 벤처나 혁신중소기업이 자금이나 금융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자본시장도 그동안 모험자본의 공급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키워 낸 유니콘 기업이 몇이나 되는가.

은행의 여신심사 시스템이나 담보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은 넓게 보아 금융혁신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코스닥 등 거래소 상장 기준을 혁신기업에 친화적으로 바꾸는 일도 마찬가지다. 혁신기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해당 금융회사 직원의 책임을 되도록 묻지 않는 것도 중요한 개혁 조치다. 결국 현 상황에서 혁신금융을 제대로 공급하려면 금융혁신을 동시에 도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융혁신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금융혁신이 자동적으로 혁신금융을 확대할 것이라는 자세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혁신을 통해 새로 공급되는 금융서비스가 자리잡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최근 정부가 도입하고 있는 동산담보 시스템이나 동산담보 대출의 예를 들어 보자. 동산담보에 근거한 대출이 가능해지면 수많은 중소기업들에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동산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등기 문제가 복잡하며 담보 가치를 회수할 수 있는 시장도 미약한 형편이다. 동산담보 대출이 활성화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수두룩하다.

금융혁신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핀테크 등은 혁신금융과의 거리가 더 멀다. 지급 결제나 송금, 이체, 조회 등 금융소비자의 편의 제고가 우선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P2P 대출이나 크라우드펀딩과 같이 혁신기업에 적용될 수 있는 사례도 여러 가지 있으나 투자자 보호 등 본격적인 시장 조성까지 해결할 과제가 많다. 결국 핀테크처럼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기술로 특징 지워지는 금융혁신은 당장 혁신금융을 활성화하는 데 쓰임새가 크지 못하다. 물론 금융혁신이 향후 한국 금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한 축임에는 변함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금융에는 새롭거나 혁신적이지 않고 오히려 우직스럽게 보이는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인내자본은 투자의 불확실성이 높고 회수 기간이 길어도 참을 수 있는 자금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핵심 기술이 다양하고 융복합이 변화무쌍하게 이루어져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 더욱이 기술 개발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자금과 금융서비스를 공급하는 금융업자가 인내하지 못하면 기술 개발이 실패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에서 인내자본의 역할이 강조되는 배경인데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2019-04-10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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