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퀸’ 욕쟁이 이혼녀 되다 ‘고령화가족’ 주연 공효진

드라마 ‘파스타’ ‘최고의 사랑’, 영화 ‘러브픽션’이 거푸 흥행 홈런을 날리면서 ‘공블리’(사랑스러운 공효진) ‘로코(로맨틱코미디)퀸’ 같은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천명관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송해성 감독의 ‘고령화가족’(작은 9일 개봉)에서 공효진(33)은 두번 결혼에 실패한 욕쟁이 이혼녀로 나온다. 제목이 암시하듯 나잇값 못 하는 콩가루 가족 얘기다. 첫째 아들 한모(윤제문)는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엄마(윤여정)에게 기생한다. 집안의 유일한 대졸 학력자인 둘째 인모(박해일)는 영화를 말아먹고 빌붙으러 왔다. 두 번째 결혼마저 실패한 뒤 여중생 딸(진지희)을 데리고 엄마 집으로 온 셋째 미연이 공효진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30대 중반”이 된 공효진은 “어렸을 때 연애할 땐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싶더니 서른을 넘어가니까 ‘꼭 해야 할까’란 생각이 들더라. 여자 친구들을 보면 열명 중 행복하다는 건 한 명 정도다. 남자는 열 명 중 세 명 정도더라. 딱 그게 현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br>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공동 주연이지만 비중만 보면 두 아들에게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공효진의 위상을 생각하면 의외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공효진은 “비중이 적어 고민했다. 그런데 캐릭터에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순수하고 백치에 가까우면서도 어이없게 재미있는 역할이다. 앙칼지고 욕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현실에선 그렇게 욕을 할 일이 있나”라며 웃었다. “윤여정 선생님이나 오빠들에게 묻어가는 느낌도 좋았다. 아이돌 그룹 같다고 해야 하나.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화기애애하게 찍었다”고 설명했다.

극 중 미연에게 ‘새끼’라는 말은 약과다. 큰오빠의 불룩 튀어나온 배를 발로 내리찍질 않나, 술집에서 ‘아줌마’ 소리를 듣고 욱해서 옆 테이블 남자의 뒤통수를 날린다. “어릴 때 한 살 터울 남동생과 치고받고 싸웠다. 힘은 달리지만 악착같이 달라붙어 때리면 동생이 질겁을 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고령화가족’에서 공효진의 연기는 캐릭터와 한 몸처럼 움직인다. 늘 그랬다. 모델 출신 배우에겐 숙명처럼 쫓아다니는 연기력 논란과는 무관했다. “제가 생각해도 데뷔 때부터 연기력 논란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워낙 잘하니까요. 하하하.”

‘고령화가족’
능청스럽게 답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호주로 조기 유학을 떠났던 공효진은 외환 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진 탓에 1998년 유턴했다. 한국 학교에 편입하기 전 두세달 시간이 남아 모델을 시작했다가 ‘여고괴담2’로 덜컥 배우가 됐다. 그는 “그땐 영화 현장이 지긋지긋했다. 귀걸이도 못 하고 몇 달째 같은 옷만 입었다. 라면 먹고 쪽잠을 자다가 퉁퉁 부은 채 잔뜩 인상을 쓰고 찍었다. 그래서 자연스러웠나 보다. 너무 잘하려 해도 긴장하고 굳어지지 않나”라고 말했다.

평소 억양과 톤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딕션’(발성·발음)은 신인 연기자 공효진의 장점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나온 박진영이 “노래하는 목소리와 평상시 목소리가 똑같아야 한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 셈. 공효진은 “딕션은 타고나는 것 같다. 말을 잘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귀에 쏙쏙 들어오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나도 좀 그런 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잘하는 것처럼 비쳤을 수 있다. 물론 해일이 오빠처럼 말재주 없이도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호호.”

‘여고괴담2’를 대형 스크린으로 보던 날 결심했다. 배우가 되기로. “진짜 못생겼더라. 가관이었다. 그땐 촬영하면서 모니터링 같은 것도 몰랐다. 그런데 의외였다. 시사가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진짜 학생을 캐스팅했나. 너무 잘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생전 처음 더 잘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떠올렸다.

처음부터 주연이었다. 주위에선 늘 ‘잘한다’고 했다. 매너리즘에 빠졌다. “(배우로서) 알아야 할 건 다 알았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자만했다. ‘가족의 탄생’(2006)을 찍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같은 역할을 같은 배우가 하더라도 조금만 비틀고 돌리고 꼬기만 해도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연기란 무궁무진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한 “원래는 한우물을 파고 끝장을 보는 성격이 아니다. 누굴 이겨보겠다거나 어느 위치까지 올라가겠다는 생각도 별로 안 한다. ‘적당히’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젠 승부욕이 생겼다. 진짜 잘해 보고 싶다. 지난 1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 열정적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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