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전하는 생존에 대한 숭고함

수마트라 해협에서 1700해리 떨어진 인도양의 어느 지점.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는 부드럽게 찰랑이는 해 질 무렵의 바다를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다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화물용 컨테이너가 떠다니고, 어디선가 낮게 깔린 로버트 레드퍼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안해.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말 한다는 게 별 의미 없다는 건 알지만. 내가 노력했다는 건 다들 알 거야. 진실하고 강하고 옳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 이제 모든 걸 잃어버렸어.”

시간은 8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름도 없이 ‘우리의 인간’(Our Man)이라고 명명된 레드퍼드는 바닷물이 들이치는 요트 안에서 깨어난다. 그는 첫 장면에 등장한 화물용 컨테이너가 요트 한 구석을 들이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요트 깊숙이 박힌 컨테이너를 어렵게 떼어내지만 조향 장치는 이미 망가진 뒤다. 망망한 바다 위에서 그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 소금물에 젖은 라디오는 작동을 멈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이 몰아친다. 돛대가 부러지고, 임시변통으로 수리한 배는 바닷물로 가득 찬다. 가까스로 구명보트를 띄운 그는 무력하게 요트가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본다. 식량도, 마실 물도 떨어져 간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다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올 이즈 로스트’는 오롯이 레드포드가 이끌어 가는 영화다. 대사는 거의 없다. 라디오를 통해 무용한 구조 신호를 보내거나 거듭되는 불행에 잠깐 신을 저주하는 것이 전부다. 호들갑 떨거나 불행을 과장한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레드퍼드의 지친 표정과 쇠잔한 육체를 통해서만 관객은 그의 막막함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그가 왜 바다 위를 떠돌고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유서로 보이는 첫 장면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가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있었다는 미묘한 뉘앙스를 전달할 뿐이다. 제목 그대로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바다는 최악의 불행이 닥친 뒤에도 더한 불행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듯 끊임없이 고난을 떠안긴다. 그래도 그는 절대 삶을 향한 의지를 놓지 않는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올해 일흔일곱 살의 레드퍼드는 우리 중 누구라도 그러리라는 사실을 묵묵히 보여준다. ‘올 이즈 로스트’는 살아있다는 것의 숭고함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영화다. 106분. 7일 개봉. 12세 관람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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