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영웅의 인종차별 뛰어넘은 ‘레이스’

독일 나치 체제에서 개최됐던 1936년 베를린올림픽 하면 우리는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 경주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일제강점기 한민족에게 기쁨과 울분을 동시에 안겼던 손기정이 떠오른다. 세계적으로는 미국의 단거리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를 기억하기 십상이다. 흑인으로 당당히 올림픽 4관왕을 차지한 그는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을 올림픽을 통해 입증하려던 아돌프 히틀러의 꿈을 무너뜨린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레이스’는 바로 제시 오언스와 베를린올림픽을 다룬 영화다. 육상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오언스(스테판 제임스)가 백인 코치 래리 스나이더(제이슨 서디키스)를 만나 난관을 극복하고 올림픽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에는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히틀러가 왜 오언스와 악수를 하지 않았는지 여러 설이 분분한 가운데 이 영화에서는 상당히 미국적인 시각에서 이 대목을 해석한다. 당초 100m, 200m, 멀리뛰기에만 출전할 예정이었던 오언스가 400m 계주까지 나가 역사를 쓰게 된 비화 또한 흥미롭다. 단거리달리기보다 멀리뛰기가 가장 결정적인 종목으로 다뤄지는 점도 재미있다. 규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아 멀리뛰기 예선에서 탈락 위기에 몰린 오언스가 독일 선수 루츠 롱의 도움으로 결승에 진출하기 때문이다. 둘은 스포츠맨십으로 쌓아 올린 우정을 계속 이어 갔다고 한다.

에피소드 자체는 관객들의 구미를 잡아당길 요소가 많은 반면 전체적으로 캐릭터와 이야기 흐름이 밋밋한 편이다. 카메라는 그저 잔잔하게 오언스를 따라갈 뿐이다. 영화는 오언스가 영웅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인종차별 문제에서는 유대인을 차별했던 당대 독일 못지않았던 미국의 씁쓸한 현실을 꼬집으며 막을 내린다. 오언스 같은 불세출의 스타가 나왔지만 미국 내 인종차별은 계속된다. 올림픽 역사를 살펴봐도 이를 충분히 알 수 있다.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육상 남자 200m 경주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던 토미 스미스는 시상대에 올라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동메달리스트 존 카를로스와 함께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번쩍 치켜들었다. 미국 내 인종차별에 항의한 유명한 사건이다.

원래 제시 오언스 역에는 존 보예가가 캐스팅됐다고 한다. 하지만 ‘스타워즈 에피소드7: 깨어난 포스’에 발탁돼 중도 하차했다. 12세 관람가. 25일 개봉.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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