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로 살고픈 열여섯 소녀의 이야기

그녀의 이름은 라모나, 그의 이름은 레이. 그녀와 그는 같은 사람(엘르 패닝)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녀)는 몸은 여성인데 정신은 남성이라는 뜻이다. 여성으로 태어나 라모나라고 불리지만, 그(녀)는 본인을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레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제 열여섯 살인 그(녀)는 명실상부한 남성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레이는 미성년자라서 부모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과연 그(녀)는 이름뿐만 아니라 성(性)도 남성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것이 영화 ‘어바웃 레이’의 줄거리다.

그런데 이런 정리는 서사를 단순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영화는 제목과 다르게 레이보다, ‘레이와 관계 맺고 있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엘르 패닝이 레이를 열심히 연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레이 자체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자기 자신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도 레이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결단을 밀고 나간다. 호르몬 치료를 받아 “평범한 남자”로 살겠다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호르몬 치료를 받는다 해도 레이가 결코 평범한 남자로 살 수 없는 현실을.

그런 중요한 문제를 그(녀)는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갈팡질팡하는 사람은 레이가 아니라 레이의 가족―특히 어머니 매기(나오미 와츠)다. 딸 라모나가 아들 레이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매기는 “나중에 얘가 ‘엄마, 실수였어요’ 하면 어쩌죠?”라고 걱정하고, “누가 레이를 사랑해 줄까요?”라며 눈물 흘리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녀는 순간의 선택이 예상치 못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다.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힘겹게 레이를 키우게 된 매기의 사정이 이와 연관된 탓이다. 충동과 소망을 구별하지 못한 젊은 시절이었다. 거기에서 비롯된 책임을 그녀는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매기는 한 번 내디디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의 무서움을 절실히 느낀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자식의 의사를 존중하되, 전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마침내 매기가 호르몬 치료 동의서에 서명하는 때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남성이 되겠다는 레이의 결심은 처음부터 확고부동했다. 그러니까 매기가 그(녀)에게 확인하려 한 사항은 단 하나였으리라. 지금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긴 그 무엇으로 인해, 훗날 레이가 상처 입고 후회할지라도 버티고 살아갈 각오가 섰냐는 것이다. 마음의 준비가 고통의 양까지 줄이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고통이 마음을 완전히 집어삼키게 하지 않을 수는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이지 않고, 자기가 자신을 속였을지라도. 24일 개봉. 15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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