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거대한 사건이 일어난 뒤 진행되는 일에 집중하는 영화가 ‘워스’다. 2018년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사라 코랑겔로가 만들었다. 이 작품은 미국 내에서 911 테러 피해자 보상 기금 동의 서명에 관한 실화를 극화했다. 국가가 저지른 과오도 아닌데 국가가 알아서 보상까지 해 준다니. 마땅히 고마워해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 번도 피해자 입장에 서 본 적 없음이 분명하다. 911 테러 피해자 보상 기금 동의 서명 책임자가 된 변호사 켄(마이클 키튼 분)도 그랬다.
켄은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애국심을 발휘해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의 선의는 911 테러 피해자들에게 가닿지 않았다. 희생자와 유족의 아픔에 공감한다고 했으나 켄의 행동은 달랐다. 그는 일률적인 보상 금액 공식을 고안했다. 직업연봉나이부양가족 등에 따라 지급금이 결정되는 방식이었다. 켄은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25개월 안에 911 테러 피해자 보상 기금 동의 서명을 80% 이상 받아야 하는 프로젝트도 별로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켄이 맡은 프로젝트는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911 테러 피해자들이 그를 신뢰하지 않은 탓이다. 켄은 희생자와 유족의 개별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아니 알기를 거부한 채, 자기 편한 방법으로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수치화했다. 그리고 이를 일방적으로 통보해 버렸다. 그가 인망을 잃는 것은 당연했다. 애초에 명분이 부족했던 면도 있다. 이는 911 테러 피해자들이 제기할 각종 소송이 끼칠 경제적 악영향을 우려한 미국 정부가 분쟁을 피할 목적으로 제정했으니까.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