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가벼워진 英 파운드화 가치…100년 만에 4분의 1로

한없이 가벼워진 英 파운드화 가치…100년 만에 4분의 1로

입력 2016-07-10 10:31
업데이트 2016-07-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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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2주새 13% 떨어져 31년來 최저…5% 오른 엔화와 대조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브렉시트 결정 이후 사상 최저를 향해 폭락하고 있다.

10일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파운드화는 올 들어 지난주까지 12.6% 하락해 아르헨티나 페소화(-12.1%)를 제치고 주요 통화 31개 가운데 가장 많이 떨어진 통화가 됐다.

파운드화 환율은 브렉시트가 결정되기 전인 지난달 23일 1.49달러에서 지난 6일에는 1.28달러까지 20센트 이상 떨어졌다. 파운드가 1.3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1985년 이후 31년 만이었다.

영국 중앙은행(BOE)의 존 카니 총재가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 둔화를 경고한데다 영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 우려가 커진 것이 파운드화 하락 압력을 높였다. 특히 영국 부동산펀드들은 잇따라 환매를 중단해 2008년 금융위기를 연상시켰다.

◇ 올 들어 파운드 13% 떨어지고 엔화 20% 올라

파운드화 가치는 현재 1.29 달러대로 영국의 국민투표일인 지난달 23일 이후 하락폭은 13.4%에 이른다.

파운드와 함께 브렉시트로 직접 피해를 보는 이웃 유럽 나라들의 유로화도 덩달아 떨어져 브렉시트 이후 달러 대비 3% 하락한 상태다.

반면 불확실성 고조 속에 안전자산으로 각광 받은 엔화는 브렉시트 결정 이후 5.1% 상승했다. 엔화 가치는 달러당 105엔대에서 현재 100엔대까지 높아져 도요타자동차를 필두로 한 일본의 수출 기업을 짓누르고 있다. 브렉시트 결정 당일에는 한때 100엔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엔화는 올 들어 가치가 20% 상승해 가장 값이 많이 뛴 통화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미국 달러도 강세가 계속되고 있다. 세계 10개 주요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블룸버그 달러 지수는 1,165.98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1,197.37까지 올라갔다가 1186.33으로 내려간 상태다.

브라질 헤알화도 4% 상승했으며 멕시코 페소화는 1.3% 올랐다.

반면 중국 위안화는 1.7% 하락했으며 한국 원화도 1% 내렸다.

◇ 파운드, 달러에 밀려 100년간 내리막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폐로 1천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파운드는 한때 위세등등했지만 지난 100년간 달러 대비 가치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 무렵에 파운드화는 5달러에 가까웠지만, 현재는 1.3 달러에도 못 미쳐 약 4분의 1 수준이다.

‘무게’를 뜻하는 라틴어 ‘폰두스’(poundus)에서 이름을 얻은 파운드화의 가치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

파운드화가 본격적인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31년이다. 파운드화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며 금본위제를 포기한 때다.

1944년에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하면서 국제무역에서 파운드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미국 달러의 시대가 열렸다. 이후 달러는 독보적인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다.

영국은 1949년 파운드를 30% 평가절하했고 1967년에도 14% 내려 파운드는 2.4달러까지 낮아졌다. 1976년에는 실업률과 물가가 치솟자 IMF에 손을 벌렸고 파운드화는 1.7달러까지 떨어졌다.

1985년에는 초강세였던 미국 달러를 떨어뜨리기 위한 국제사회의 개입, 이른바 플라자합의로 파운드화는 1.2달러까지 내려갔다.

영국은 1990년 유럽 국가들의 준 고정환율제인 환율조정메커니즘(ERM)에 가입했지만, 독일 마르크화와의 연동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2년만인 1992년에 고정환율을 포기했다.

이때 ‘검은 수요일’을 기점으로 파운드화는 20% 이상 폭락했다.

당시 파운드화 약세에 공격적으로 베팅해 큰돈을 챙겼던 조지 소로스는 브렉시트 결정으로 파운드가 20% 정도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한 바 있다.

소로스는 파운드가 1.15달러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봤다. 이는 1971년 이후 평균 환율보다 60센트 가량 낮은 수준이다.

◇ 1파운드=1달러 등가 시대 처음으로 오나

골드만삭스와 씨티은행은 파운드가 1.2달러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최근 예상했다. 이는 BOE가 브렉시트 결정의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면 파운드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의 통화 전략가인 로빈 브룩스는 보고서에서 “BOE의 정책 대응이 파운드 약세를 몰고 올 것”이라고 했다. 3개월 안에 1.2달러까지 갈 것이라고 봤다.

도이체방크는 이보다 더 낮게 올 연말에 1.15달러까지 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1파운드=1달러’의 등가(等價)를 칭하는 ‘패리티’(parity) 시대가 처음으로 올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자문은 “패리티는 기본 시나리오는 아니고 위험 시나리오”라고 전제하면서도 “정치인들이 영국과 유럽연합 나머지 회원국 사이의 충분한 자유무역을 유지하는 포괄적인 ‘플랜 B’를 내놓지 못하면 파운드화는 패리티로 향할 수 있다”고 지난주 경고했다.

조지 매그너스 전 UBS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시 “파운드가 국민투표 전보다 20% 떨어질 수 있다. 1.15달러가 기본 시나리오”라면서도 “경제가 예상보다 심각하게 위축되거나 정치적 난국 때문에 신뢰가 크게 낮아지면 패리티는 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파운드화 하락으로 영국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경기침체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통화 가치 하락으로 가격이 국제적으로 달러로 표시되는 석유나 항공료 등은 물론 수입 과일이나 채소, 담배 등도 상당히 오를 것으로 보인다. 수출 여건이 현저히 나아지지 않는다면 물가는 임금보다 빠르게 올라 가계의 고통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화의 추가 하락 가능성을 놓고 오는 14일 열리는 BOE의 통화정책위원회 회의에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마크 카니 BOE 총재는 이미 올여름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완화가 필요하다고 지난달 30일 말한 바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문가 53명 가운데 29명은 이번 회의에서 0.5%인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예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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