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서 활개친 가짜뉴스 사이트…민주주의의 위협

미 대선서 활개친 가짜뉴스 사이트…민주주의의 위협

입력 2016-11-15 12:21
업데이트 2016-11-1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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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청년들 돈벌이 ‘창조경제’…反힐러리 가짜뉴스로 트럼프지지자 클릭유도

지난 2002년 한국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바람, 2004년 미국 대선에서 하워드 딘 바람에서 시작해 2010~2011년 아랍의 봄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바람을 일으킨 인터넷이 거꾸로 독재자와 권위주의 통치자들의 감시와 통제 수단으로도 활용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세계 도처에서 인터넷의 효용을 곧바로 터득한 지배층은 감시와 통제를 통해 자유로운 의견 소통의 장으로서 인터넷의 기능은 최대한 억제하면서 역정보와 허위정보를 쏟아내는 통로 기능을 극대화해 권력 유지의 효율적인 수단으로 삼고 있다.

특히 최근 끝난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선, 인터넷이 대통령선거 같은 대형 정치적 이벤트 때 돈벌이 목적의 ‘가짜뉴스’의 대량 확산 매개체로 작동하면서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도 사회적 신뢰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역작용을 하는 새로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미국 대선이 한창일 때 월드폴리티쿠스닷컴(WorldPoliticus.com)이라는 사이트에 ‘밀레니엄(미국의 현 청년세대)을 위한 뉴스!’라며 네티즌의 클릭을 유도한 ‘뉴스’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소식통을 인용,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이메일 사건으로 인해 2017년 기소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에겐 학수고대하던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실제론 거짓인 이 뉴스는 페이스북에서 14만 건의 공유와 댓글 등을 낳을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그 사이에서 미국에서 9천600km 떨어진 유럽의 한 가난한 소국 마케도니아의 인구 4만5천 명인 소도시 벨레스에선 한 청년이 문제의 가짜뉴스 조회 수가 올라가는 만큼 구글의 광고 프로그램인 애드센스의 자신 계정에 돈이 쌓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청년뿐 아니다. 벨레스에선 올해 초 미국 대선전이 본격화되면서인 트럼프 열풍을 이용, 트럼프 지지자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어하는 클린턴에 관한 ‘나쁜 뉴스’, 그러나 실제론 거의 대부분 허위인 뉴스로 이들의 클릭을 유도해 너도나도 돈벌이에 나서는 ‘디지털 골드러시’가 펼쳐졌다.

미국 매체 버즈피드는 지난 4일 ‘발칸반도의 10대들이 가짜뉴스로 트럼프지지자들을 속이고 있다’며 벨레스 한 도시의 청년들이 개설한 ‘친 트럼프’ 웹사이트만 해도 최소 140개(활동 중단 40개 포함)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들 사이트는 트럼프비전365, 유에스컨서버티브투데이, 도널드트럼프뉴스 식으로 마치 미국 것인 것처럼 이름을 붙였고, 클린턴에 반대하는 미국의 보수층 유권자와 트럼프지지자들이 혹하기 쉬운 친 트럼프 내용으로 채워졌다.

마케도니아 청년들이 트럼프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관심도 없다. 순전히 클릭할 때마다 들어오는 돈 때문이다.

푼돈이라 하더라도 쌓이면 이 가난한 나라의 청년들에겐 큰돈이 되는 ‘창조경제’다. 음악도로서 악기를 사기 위해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이 사이트를 개설했다는 17세 운영자는 “마케도니아 경제가 어렵고 10대들은 취업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버는 창조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버즈피드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올해 초 일찌감치 이런 사이트의 사업성에 착안한 사람 중엔 매월 5천 달러(586만 원)를 벌어들인 개척자도 있다. 페이스북에서 히트하면 하루에 3천 달러의 수입을 올린 경우도 있다.

벨레스의 청년들은 처음엔 진보성향의 버니 샌더스 민주당 경선 후보에 유리한 사이트들도 개설해 봤으나, 페이스북에서 반응이 친 트럼프 사이트만큼 장사가 되지 않았다.

“미국 사람들은 트럼프에 관한 뉴스를 읽기를 좋아한다”고 16세인 BVA뉴스닷컴 운영자는 말했다. 주류 매체들에서도 시청률과 신문판매 부수와 광고를 좇아 트럼프 뉴스가 넘쳤던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버즈피드가 찾아낸 가장 ‘성공적인’ 가짜뉴스는 “클린턴이 지난 2013년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들이 공직에 출마했으면 좋겠다. 그들은 정직해서 매수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 가짜 기사는 사실과 허위를 가리지 않는 미국의 ’더라이티스츠닷컴‘을 인용한 것이다. 클린턴은 성공한 기업인들이 정치권에 들어오면 좋겠다고 말하기는 했으나 트럼프를 지목한 것은 아니다.

이 가짜 기사는 페이스북에서 1주일 만에 누적 집계로 48만 건의 공유, 좋아요, 댓글을 기록했다. 트럼프의 소득세 의혹 관련 뉴욕타임스의 특종보도에 대한 한 달 동안의 누적 반응이 17만5천 건인 것에 비하면 트럼프지지자들 사이에서 그 가짜 기사의 인기도를 짐작할 수 있다.

버즈피드는 자신들이 파악한 마케도니아발 사이트의 게시 내용 중 가장 반응이 많은 5건 중 4건이 허위였다고 밝혔다. 이들 허위 게시물은 대부분 미국의 이름없는 우파 사이트들로부터 수집한 것을 종합하거나 그대로 베낀 것들이다.

’케냐 출생 이슬람교도 대통령(버락 오바마)이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하도록 한 뒤 기소함으로써 자신이 3선 대통령을 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교황의 트럼프 지지가 부정선거를 막았다‘ ’클린턴은 국제 아동 노예와 섹스집단의 중심인물로 악마 숭배자다‘ ’첼시아 클린턴은 빌 클린턴(전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힐러리가 다른 남자와 바람 피워 생겼다‘ ’빌 클린턴도 흑인 매춘부와 사이에 낳은 자식이 있다‘라는 등의 허위 사실들을 퍼뜨린 매체들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14일(현지시간) 칼럼에서 ’뉴스를 가장한 거짓말들‘을 퍼뜨리는 ’대안 우파‘ 혹은 ’가짜뉴스 사이트‘들로 인한 잘못된 정보가 관용의 미덕과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반대로 예측한 주류 언론이 보통 유권자들과 유리돼 있었다는 것을 자아비판 하면서, 그 ’유리‘의 한 측면으로서 “대안 우파 사이트들에서 이런 가짜들이 넘쳐나는 것을 미처 몰랐거나 대응하지 않은 점”도 실책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주류 언론의 사업모델이 위기에 빠진 가운데 이들 대안 우파 사이트들은 인종주의를 조장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가짜 ’뉴스‘들로 돈벌이하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며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 사이트가 곧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게 될 사람(트럼프)이 내주는 면허까지 갖고 있다는 점”이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대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9일 버즈피드의 후속 기사는 지난 7월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자들의 페이스북 모임인 버니크래츠(Berniecrats)에 가입 신청이 쇄도했고, 이들 신규 가입자의 계정을 통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웹사이트들에 게시된 반(反) 힐러리 클린턴 가짜 기사들이 무더기 공급되기 시작한 현상을 다뤘다.

샌디에이고 지역 운영 책임자인 존 매티즈가 조사한 결과 이들 계정은 마케도니아 벨레스 청년들 것이었다.

버즈피드에 마케도니아발 친 트럼프 가짜뉴스 홍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제보자들 가운데는 그 스스로 미국에서 10개의 가짜뉴스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존 매티즈는 버니크래츠에 던져진 가짜뉴스 폭탄은 “본선에서 클린턴에 투표할 것으로 기대되는 샌더스 지지자들 사이에 클린턴에 대한 의심을 확산시킴으로써 결국 트럼프를 돕는 것이었다”며 정치공작의 일환일 가능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버즈피드는 그러나 매티즈도 자신들도 그에 관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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