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없는 싸움’ 몰아넣은 이라크·아프간 전쟁의 설계자

‘이길 수 없는 싸움’ 몰아넣은 이라크·아프간 전쟁의 설계자

이경주 기자
이경주 기자
입력 2021-07-01 17:58
업데이트 2021-07-02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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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즈펠드 전 美국방장관 별세

포드·조지 부시 정부 국방 정책 이끌어
전쟁 명분 대량살상무기는 발견 안 돼
부시 “모범적인 공직자… 책임 안 피해”
회고록서 ‘北체제 전복’ 강경 입장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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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장관을 두 차례 역임하며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기획했던 도널드 럼즈펠드가 3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사진은 이라크전 초반인 2004년 5월 럼즈펠드가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를 방문한 모습. 이 수용소에서 미군 간수들이 포로를 학대한 정황이 폭로돼 럼즈펠드가 사의를 표했을 정도로 곤혹스러웠던 와중의 방문이었다. AFP 연합뉴스
미국 국방장관을 두 차례 역임하며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기획했던 도널드 럼즈펠드가 3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사진은 이라크전 초반인 2004년 5월 럼즈펠드가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를 방문한 모습. 이 수용소에서 미군 간수들이 포로를 학대한 정황이 폭로돼 럼즈펠드가 사의를 표했을 정도로 곤혹스러웠던 와중의 방문이었다.
AFP 연합뉴스
‘매파,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설계자’ 등으로 불린 도널드 럼즈펠드(88) 전 국방장관이 3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9·11 테러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을 완전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지 약 80일 만이다. “6일 또는 6주이지, 6개월은 아니다”라며 호기롭게 이라크전을 시작했던 그는 미국을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몰아넣은 장본인으로 여전히 비판받고 있다.

프린스턴대를 나온 뒤 30세에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럼즈펠드는 41세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고,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43세로 최연소 국방부 장관에 올랐다. 길리어드 사이언스 등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며 부를 쌓기도 했다.

총 4명의 공화당 대통령 밑에서 백악관 비서실장, 대통령 고문, 중동 특사 등을 역임했지만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두 번째 국방장관을 6년간 맡았을 때 존재감이 가장 컸다. 74세 최고령 국방장관으로 퇴임했고, 국방부를 두 번 이끈 유일한 인물이 됐다.

이 기간에 그는 2001년 9·11 테러 책임을 묻기 위한 이라크 전쟁을 앞장서 주장했고, 2003년 3월 시작한 이라크전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압도적 군사력을 투입하는 그간의 전투와 달리 럼즈펠드는 군살을 덜어내고 드론 등 첨단무기를 이용한 속도전으로 바그다드를 효율적으로 함락시켰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같은 해 12월 생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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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별세한 도널드 럼즈펠드는 1975~1977년 제럴드 포드 행정부, 2001~2006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미국 국방장관을 지냈다. 1974년 백악관 비서실장 시절의 럼즈펠드(왼쪽)가 크리스마스이브 동안 콜로라도 베일에서 가족 휴가 중이던 포드 전 대통령과 회의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30일(현지시간) 별세한 도널드 럼즈펠드는 1975~1977년 제럴드 포드 행정부, 2001~2006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미국 국방장관을 지냈다. 1974년 백악관 비서실장 시절의 럼즈펠드(왼쪽)가 크리스마스이브 동안 콜로라도 베일에서 가족 휴가 중이던 포드 전 대통령과 회의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하지만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이라크가 테러리스트에게 공급했다던 대량살상무기(WMD)가 발견되지 않았다. 전쟁이 3년 넘게 지속되자 반전 세력의 비판도 커졌고, 아부그라이브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미군의 수용자 학대와 인권침해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결국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패하자 부시는 12월에 럼즈펠드의 사의를 수리했다.

그는 2002년 WMD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정보에는) ‘안다는 것을 아는 것’(known knows),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known unknowns),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들이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증거 없는 전쟁을 일으킨 철학적 배경으로 이해된다. 그는 2011년 이 말을 차용한 회고록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Known and Unknown)에서 이라크전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라크전으로 4400명 이상의 미군과 수십만명의 이라크인이 사망했고, 직접 비용만 8150억 달러(약 923조 5000억원)였다고 전했다. 또 이라크전 때문에 아프간전이 뒷전으로 밀려났고, 탈레반이 다시 힘을 얻었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당시 럼즈펠드의 연설문 비서관이었던 맷 래티머는 럼즈펠드의 ‘오명’을 정치적 희생으로 봤다. 그는 이날 폴리티코 칼럼에서 “후세인 정권의 교체는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공식 정책”이었고 WMD 관련 주장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조 바이든 당시 상원의원,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 등도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모두 등을 돌려 전쟁을 비난했을 때, 럼즈펠드는 정치 대신 책임을 졌다는 것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럼즈펠드는 “모범적인 공직자이자 매우 훌륭한 사람”이라며 책임을 결코 피하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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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11 테러 추모식이 열린 펜타곤에서 럼즈펠드(오른쪽)가 부시 전 대통령과 입장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2019년 9·11 테러 추모식이 열린 펜타곤에서 럼즈펠드(오른쪽)가 부시 전 대통령과 입장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럼즈펠드는 북한에 대해서도 강경 노선을 고수했다. 1974년에 이은 2003년 두 번째 방한 때 “분명히 우리는 북한의 정권이 교체되기를 희망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여기저기에서 나라들이 없어지는 극적인 변화를 우리는 보아 왔다”고 말해 북한을 자극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외교·경제적 대북 압박으로 북한의 군부가 당시 김정일 체제를 전복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2021-07-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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