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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다이아 팔찌는 어떻게 245년 견뎠을까

마리 앙투아네트 다이아 팔찌는 어떻게 245년 견뎠을까

임병선 기자
입력 2021-11-10 09:29
업데이트 2021-11-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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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경매서 예상가의 곱절 넘는 96억원에 낙찰

9일(이하 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746만 스위스프랑(약 96억원)에 낙찰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팔찌 한 쌍을 직원이 지난 3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9일(이하 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746만 스위스프랑(약 96억원)에 낙찰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팔찌 한 쌍을 직원이 지난 3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프랑스 대혁명 와중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팔찌 한 쌍이 경매에서 746만 스위스프랑(약 96억원)에 낙찰됐다.

경매업체 크리스티가 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한 경매에서 예상 낙찰가 200만∼400만 달러의 곱절에 이르는 가격에 팔렸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물론 전화로 경매에 참여해 낙찰받은 이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에 오른 2년 뒤인 1776년 주문해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이 팔찌는 각각 1∼4캐럿 무게의 다이아몬드 56개로 구성돼 있다. 모두 112개이니 무게만 140∼150캐럿으로 추정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합스부르크 공국을 다스렸던 마리아 테레지아와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1세의 딸로 1755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14세이던 1770년 결혼하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왔다. 할아버지 루이 15세가 서거한 뒤 신랑이 1774년 5월 10일 루이 16세로 즉위하면서 왕비가 됐다. 대혁명의 격변 속에 남편이 먼저 처형된 뒤 몇 개월 만에 37세 나이에 처형 당했는데 낭비벽이 심해 남편인 국왕을 망쳤다는 혐의로 반역죄 판결을 받아서였다.

그녀는 1791년 1월 튈르리 궁전에 수감되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보석을 나무 상자에 넣어 브뤼셀에 있던 전 오스트리아 대사에게 전하게 했다. 프랑스를 몰래 빠져나간 보석들은 딸인 마리 테레스(나중에 마담 로열로 불림)가 오스트리아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건네져 지금까지 후손들이 200년 넘게 간직하고 있었다고 크리스티는 설명했다. 아울러 경매소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팔찌가 경매에 나온 것도 사상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크리스티 경매소의 유럽 회장인 프랑수아 쿠리엘은 경매에 앞서 “이번 팔찌들은 프랑스 역사에 가장 중요한 시절을 관통해 영광과 영예, 극적 드라마를 보여준다”고 자랑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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