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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눈의 난민 소녀, 아프간 돌아가 지내다 탈레반 피해 로마에

초록눈의 난민 소녀, 아프간 돌아가 지내다 탈레반 피해 로마에

임병선 기자
입력 2021-11-26 08:44
업데이트 2021-11-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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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월 미국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에 실려 세계인의 시선을 붙든 아프가니스탄 파슈툰족 난민 소녀 샤르밧 굴라(왼쪽)와 17년 뒤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가 다시 아프간에서 조우했을 때의 그녀. .
1985년 6월 미국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에 실려 세계인의 시선을 붙든 아프가니스탄 파슈툰족 난민 소녀 샤르밧 굴라(왼쪽)와 17년 뒤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가 다시 아프간에서 조우했을 때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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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어질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이 파슈툰족 소녀의 초록빛 눈동자와 그 눈빛에 어린 간절함을 기억할 것이다. 1985년 5월 미국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에 실려 세계인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녀였던 샤르밧 굴라가 20년 만에 다시 정국을 장악한 탈레반의 손길을 피해 이탈리아 로마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AP 통신이 이탈리아 총리실 발표를 인용해 25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이 사진이 촬영된 1984년에 그녀는 열두 살 밖에 되지 않았다. 파키스탄 난민촌 학교에서였다. 온갖 박해와 세월의 핍진함을 견디던 소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들어 보였다.

마리오 드라기 총리실은 조국을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 굴라의 요청을 받고 국제적 협력을 이끌어 그녀가 로마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녀가 이탈리아 사회에 잘 적응해 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37년 전에 굴라의 사진을 촬영했던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소련군이 물러난 뒤 돌아온 것이었다. 맥커리는 이 때에야 그녀가 1972년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의 이름도 처음 알게 됐다. 그녀는 첫 사진이 찍힌 이듬해 열세 살 나이에 제빵사와 강제 결혼했는데 막내 아들이 죽고 남편도 죽고 홀로 딸 셋을 키운다고 했다. 17년 뒤라 스물아홉 살이었는데 역시나 신산한 세월 탓인지 50대 초반처럼 보여 맥커리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녀는 2014년 다시 파키스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굴라는 파키스탄 당국이 가짜 신분증을 사들였다는 이유로 자신을 아프간에 송환하겠다고 위협해 숨어 지낸다고 했다. 결국 그녀는 카불로 송환됐는데 탈레반이 다시 장악하기 전 국외로 달아나 세계인의 웃음 거리가 된 아슈라프 가니 당시 아프간 대통령이 2016년 11월 9일 리셉션에 초대도 하고 머무를 새 아파트 열쇠도 건네는 등 환대했다.
파키스탄에서 송환된 샤르밧 굴라가 2016년 11월 9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대통령궁에서 초대돼 아슈라프 가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환대받을 때의 모습.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파키스탄에서 송환된 샤르밧 굴라가 2016년 11월 9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대통령궁에서 초대돼 아슈라프 가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환대받을 때의 모습.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그녀의 안정된 생활은 지난 8월 탈레반이 정국을 다시 장악하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미국 등 동맹국들이 철수한 뒤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아프간인들을 돕는 서방 국가들 중 한 나라였는데 이번에 굴라를 피신시킴으로써 인도적 의무를 다했다고 자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성명은 장황하지만 도와준 이들의 안전을 고려해 그녀가 언제 어떤 경로로 조국을 떠나 로마에 도착하게 됐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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