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의 아픔… 여러 겹의 기억들… ‘그녀들의 수다’

실연의 아픔… 여러 겹의 기억들… ‘그녀들의 수다’

입력 2013-03-20 00:00
업데이트 2013-03-2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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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칼 개인전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


예술하는 여자를 사귀려면 조심 좀 해야겠다. 2층 전시는 ‘잘 지내길 바랍니다’(Take Care Of Yourself). 2004년 어느 날 남자친구가 편지로 이별을 통보했다. 작가가 꽂힌 건 편지 마지막 문구, 그러니까 너도 잘살라는 뜻으로 적은, 이별 편지의 그렇고 그런 문구. 작가에게 이 편지는 해독 불능이었고,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편지를 보내주고는 자기 직업에 걸맞은, 전문적인 해석을 부탁했다.

유엔여성인권전문가가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소피 칼이 남자친구에게서 받은 이별편지에 보인 반응은 안도의 한숨, ‘휴’(Phew)였다.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유엔여성인권전문가가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소피 칼이 남자친구에게서 받은 이별편지에 보인 반응은 안도의 한숨, ‘휴’(Phew)였다.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그러니까 ‘잘 지내길 바랍니다’는 작가의 요청을 받아들인 107명의 여성, 유엔여성인권전문가, 그래픽 디자이너, 동화작가, 기자, 판사, 댄서, 가수 등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답장한 것을 다 모아둔 전시다. 원래는 영상 등 다양한 매체들이 있지만, 이번 전시에는 요청을 받은 이가 편지를 읽는 사진과 해답으로 건네준 텍스트 부분만 모았다.

그래서 오는 4월 20일까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313아트프로젝트 전시장에서 열리는 소피 칼(60) 개인전에서 넘쳐나는 것은 수많은 여성들의 수군거림이다. 정보요원인 친구는 어느 숲길에서 편지를 들고 있는데, 정보요원답게 얼굴은 드러나지 않고 편지와 편지를 든 손만 보인다. 이 정보요원은 그 편지를 공작원들이 쓰는 암호문으로 번역했다. 유엔여성인권전문가의 반응은 단순하다. ‘휴’(Phew). 한숨 한 번 내쉰 것이다.

왜 하필 이런 방법을 썼을까. 작가는 “헤어짐의 시간을 늘리는 나만의 방법”이었다고 했다. 잘 지내길 바란다 했으니,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라는 얘기다. 내밀한 사생활을 공개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로 나만의 내밀한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거기다 그 편지 자체가 굉장히 의례적인 것이라 개인적 내용이라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소피 칼은 2007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때 이 작품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1970년대부터 현대미술 작업을 해 오면서 2004년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을 가졌고, 2010년 사진작가에게 주어지는 하셀블라드상을 받았다. 소설가 폴 오스터가 작가를 모델로 해서 소설 ‘거대한 괴물’을 쓰자, 그 모델을 실존인물로 만들기 위해 폴 오스터의 지시를 이행하면서 살아가는 책 ‘뉴욕이야기’를 펴내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미술 쪽보다 문학 쪽에서 지명도가 더 높은 작가다. 이번 전시가 프랑스문화원 후원으로 열리고, 문학에 관심 있는 여성들이 더 많이 고대하는 이유다. (02)3446-3137. 아참, 1층 전시는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다. 점쟁이 지시에 따라 여기저기 떠돈 기록인데, 이 역시 내밀하긴 매한가지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덧댄 그림으로 시끌벅적 이미지 표현 ‘이지현 개인전’

‘스레시홀드’(Threshold). 건축용어로는 실제 존재하지만 도면상에는 나타나지 않은 공간을 말한다. 숨겨진, 가려진, 드러나지 않은 공간이다. 실생활에서는 문턱, 문지방이란 뜻이다. “완전히 도드라지게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어주는 공간”이다. 그림을 보면 왜 이런 전시제목을 붙였는지 알 수 있다. 여러 겹이다. 어느 하나의 공간인데, 그 공간만 그려진 게 아니라 여러 공간이 겹쳐서 그려져 있다. 어느 곳에서 받은 인상과 기억들이, 그 공간과 꼭 상관이 있건 없건 하나의 화면 안에 다 들어가 있다.

이지현 작가의 ‘스트럭처 스터디-미러’(Structure Study - Mirror). 남편이 건축 공부를 하던 공간을 방문했을 때 떠오르는 온갖 기억들을 한 화면에 담았다. 두산갤러리 제공
이지현 작가의 ‘스트럭처 스터디-미러’(Structure Study - Mirror). 남편이 건축 공부를 하던 공간을 방문했을 때 떠오르는 온갖 기억들을 한 화면에 담았다.
두산갤러리 제공


4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이지현(35) 작가의 작품들이다. 그래서 작품이 전부 다 말들이 많다. 너무나 많은 얘기들이 들어있어서다.

작가 스스로도 “그간 준비해둔 작업을 다 보여주고 싶었는데, 다 걸려고 하니까 전시장이 너무 소란스러워서 다 걸 수가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처음 출발은 거울 이미지였다. 거울로 반사해서 여러 겹으로 어리는 풍경 말이다. 그러다 거울은 너무 직접적인 것 같아 지워버렸다. 남은 건 겹친 풍경들이다. 남편이 공부하던 곳에다 전혀 안 어울리는 샹들리에를 달아놓기도 하고, 멀쩡한 바닷가에 웬 건축 구조물이 놓여있기도 하다. 그림 속 공간은 미국의 국립미술관인데 칼더의 모빌에서 별의별 아이들 모습들까지 다 겹쳐있다. 풍경그림은 대개 정적이기 마련인데 작가의 풍경은 시끌벅적하다.

왜 이리 다 겹쳐 그렸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그게 회화답다고 답했다. “여러 가지를 골라가며 덧대어놓을 수 있다는 게 회화의 묘미인 건 같아요. 다른 건 시공간의 제약이 있지만, 회화는 회화니까 그 제약을 뛰어넘어 기억에 따라, 느낌에 따라 배열하고, 보는 사람도 자신의 기억과 느낌을 집어넣을 수 있는 게 그림이죠. 곁에 두고 자주자주 오랫동안 보는 그림이란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 현대미술의 대세라는 영상작품에 별 관심이 없고, 잘 보지도 않는다는 말이 그 뜻이었다. “물론 편집이라는 과정이 있긴 하지만, 껌껌한 곳에서 순차적으로 제시되는 이미지들을 계속 본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걸 2차원적이지만 한 화면에 다 담아내는 게, 그게 그림의 매력 아닌가요.” 그런데 풍성한 기억이 앞으론 조금 더 단촐해질 것 같다. ‘레드 신’(Red Scene)을 가르키면서 “이런 작업을 조금 더 해보고 싶다”고 했다. 붉은 색 모노톤으로 미국 집의 실내 풍경을 그려둔 것이다.

바깥 창으로 반사되어 들어온 풍경을 붉은 타일을 통해 반사해 본 풍경이다. 거울과 반사와 겹침은 비슷하지만, 붉은 톤으로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 오히려 그 안의 복잡한 풍경을 더 잘 드러내준다. (02)708-5050.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2013-03-2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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