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미래 고뇌한 지식인에게 유택 세워주고 싶었다”

“나라 미래 고뇌한 지식인에게 유택 세워주고 싶었다”

입력 2013-04-27 00:00
업데이트 2013-04-2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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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교수 “황용주는 ‘박정희 시대’ 최고의 지식인

안경환(65) 서울대 법대 교수가 최근 펴낸 ‘황용주: 그와 박정희 시대’는 그가 지금껏 걸은 인생행로와는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안 교수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강화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고 평가된다.

2006년에는 ‘반독재의 숨은 전위’이자 인권변호사의 대명사인 조영래의 일생을 다룬 ‘조영래 평전’을 내놨다. 지난 대선 때는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와 맞붙은 문재인의 편에 섰다.

그런 그가 가장 혹독한 인권 탄압 시대로 불리는 박정희 장기 독재 체제의 숨은 공로자인 황용주(黃龍珠·1918-2001) 전 문화방송 사장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들고 나왔다.

안 교수를 지난 24일 저녁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만났다. 안 교수는 ‘학병세대’에 대한 울분이 이 책을 쓰는 간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학도병으로 끌려간 ‘학병세대’는 겨레와 사직이 어려웠던 시절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이들이 당시 최고의 엘리트층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은 입신출세를 목표로 일제 교육을 받았다는 점 때문에 친일(親日)로 쉽게 정리됐다. 이들이 일본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현실에 자학하고 나라의 미래를 얼마나 고민했는지는 쉽게 잊어버린 채 말이다.

소설가 이병주(1921-1992)의 ‘관부연락선’을 읽고 ‘학병세대’에 관심을 두게 된 안 교수가 1987년 서울대 법대 교수로 부임한 직후부터 고향(밀양) 선배이자 ‘학병세대’의 대표적 지식인인 황용주를 찾아간 것은 그래서였다.

안 교수는 “일본 와세다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부산일보의 주필이자 편집국장으로 필명을 날린 ‘학병세대’의 대표적인 인물 황용주, 그가 가진 지적인 역량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황용주는 박정희가 쿠데타를 결행하도록 근거와 이론을 제시한 ‘5.16 공모 공동 정범’이다.

서구식 민주주의로는 한국이 후진성을 벗어날 수 없다고 확신한 황용주는 1960년 부산에서 대구사범학교 동기인 박정희와 재회했을 때 “우리도 군사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을 탈피하고, 새로운 근대국가를 만들 시기가 왔다”고 쿠데타를 설득했다.

하지만 황용주의 생애를 5·16 쿠데타로만 요약하긴 어렵다.

황용주는 부산일보의 주필이자 편집국장으로서 3.15 부정선거 후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을 때 보도 통제를 뚫고 그 사진과 기사를 역사 앞에 폭로한 언론인이었다. ‘김주열 사건’ 보도는 4.19 혁명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이기 이전에 한반도 주민이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통일주의자였다.

평소에 싫어하고 인정하지 않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즈음에는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고 한다.

황용주가 1964년 11월 월간 잡지 ‘세대’(世代)에 당시로는 파격적인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을 주장한 글을 기고했다가 반공법에 걸려 나락으로 추락했던 것도 남북통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 때문이었다.

안 교수는 “현대사를 관통하는 중심인물이자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인 황용주가 박정희의 친구로만, 그리고 박정희와 관련된 기록에서 각주 비슷하게 언급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황용주의 유족에게서 그가 평생 써온 일기장을 건네받았다.

안 교수는 일기장을 바탕으로 ‘필화사건’ 이후 빈곤과 실의 속에 지내다 다른 ‘학병세대’처럼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채 세상을 뜬 황용주를 위해 작은 ‘유택’(幽宅·무덤)을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안 교수는 “잊혀 버린 ‘학병세대’와 지금의 세대를 이어줄 수 있는 역할을 의도적으로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추상적으로 하고 있었다”면서 “황용주의 일대기는 일제 말기 지식인들의 스케일과 역량에 대한 예가 아니겠는가. 황용주가 민족이라는 화두를 얼마나 절실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썼는지 드러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이 책이 철저하게 황용주 개인에 대한 글임을 강조했다. 이 책을 저자의 주관이 개입하는 평전이 아닌 황용주의 일기와 녹취록에 의거한 일대기 형식으로 쓴 것도 박정희, 그리고 지금의 정권과 연결짓는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안 교수의 의도적인 노력에도 이 책에서는 5.16 쿠데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읽힌다. 안 교수 자신도 이를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안 교수는 “4.19는 민주화의 상징이라며 옹호하고 5.16은 독재라며 무조건 배척하는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이제는 벗어났으면 한다. 5.16은 쿠데타지만 우리 근대화의 상징이지 않느냐. 결국 지금의 한국은 근대화와 민주화 세력이 함께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러한 입장은 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글을 쓰는 지난 수년 동안 나는 새삼 나 세대의 무지와 후속세대의 경박한 오만에 절망하곤 했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고뇌하고, 만들어가면서 분노하고 좌절하던 고인의 세대, 그 세대 지식인들이 입었던 상처에 따뜻한 위로와 깊은 경의를 표한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의 역사는 성공한 역사다.”

안 교수는 올해 8월 정년 퇴임한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글쓰기 작업은 계속할 것이라며 황용주와 함께 ‘학병세대’를 대표하는 또 한 명의 지식인인 소설가 이병주 평전을 쓸 계획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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