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사법시스템, 가정폭력 근절은커녕 양산”

“현 사법시스템, 가정폭력 근절은커녕 양산”

입력 2013-05-22 00:00
업데이트 2013-05-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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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토론회..”상담조건부 기소유예 폐지 등 처벌 강화해야”

현 사법시스템이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으로 가정폭력을 근절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는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허민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2일 한국여성의전화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최한 ‘가정폭력 근절정책의 쟁점과 전망’ 토론회에서 “가정폭력에 관한 현 국가 정책에는 폭력 성향을 가진 가해자를 치료함으로써 가정파괴를 막고 건전한 가정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믿음이 아주 명확하게 투영돼 있다”고 비판했다.

허 연구원은 “여성이 가정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개인이 무력하거나 의지가 없어서만이 아니다. 가해자 처벌이 미약한 상태에서 남편의 복수가 예상되고 접근금지 명령 등이 별 효과가 없다는 걸 알기에 법적 해결을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법시스템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경찰, 검사, 판사에 의해 폭력피해 사실이 부정되거나 의심받고, 더 큰 보복 폭행이나 살해까지 당하는 현실에서 가정폭력은 근절될 수 없다는 것이다.

허 연구원은 “이런 사법시스템은 오히려 가정폭력을 더 빠른 속도로 양산해 낼 것이며, 이게 바로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가정폭력을 여전히 개인의 문제, 부부간에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는 국가 정책은 가정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대중인식에 기여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정폭력은 남성이 여성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음으로써 발생하는 권력과 차별의 문제인데도, 우리 사회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 한 채 치료와 상담, 가정회복의 방법으로 풀려는 허황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허 연구원은 “가정폭력은 구조적 문제여서 해결이 어렵다고 낙담하기 쉽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경찰, 사법시스템, 국회, 행정, 교육, 노동시장 등 관련된 곳이면 어디서라도 시작할 수 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장은 “가정폭력은 인권 문제이자 사회적 범죄인데도 정부의 4대 사회악 개념을 보면 성폭력과 학교폭력은 ‘폭력’으로 규정하고 가정폭력은 ‘가정파괴범’으로 이름붙였다”며 “이는 정책 기조에도 그대로 이어져 폭력근절이 아니라 가정의 유지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고 소장은 “검찰의 2009년 가정폭력 사건 처리 내역을 보면 불기소처분이 50%, 가정보호사건 송치가 38%에 달하며 기소는 10%밖에 안 된다. 또 법원에 송치된 가정폭력 사건의 불처분 비율도 30%여서 경찰과 검찰, 법원을 거치면서 대부분 아주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아무런 조치도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민종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시행 15년을 맞은 가정폭력범죄처벌특례법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고 반드시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례법은 가정보호란 목적으로 경미한 제재수단인 보호처분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형사처벌과 보호처분이라는 이원적 구조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호 조치 또한 매우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일반 사건보다 불법의 정도나 위험이 결코 적지 않은 가정폭력범죄를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하는 게 원칙처럼 된 특례법 체계는 가정폭력이 경미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 꼴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특례법 개정 방향으로 ▲피해자 인권보호와 적절한 형벌권 실현 ▲초기단계 개입조치 강화 ▲피해자 보호명령제 도입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제9조의 2항) 폐지 ▲보호사건 처리기준 구체화 등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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