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종환, 말수 적었지만 음악 열정 대단”

“故 이종환, 말수 적었지만 음악 열정 대단”

입력 2013-05-30 00:00
업데이트 2013-05-3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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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음악 요람 ‘쉘부르’ 출신 가수들이 본 이종환”온종일 음악자료 모아”..

“이종환 선생님은 평소 말씀이 별로 없던 분이었어요.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은 너무나 대단했습니다. 40여년간 본 모습 가운데 90%는 음악에 대한 것이었으니까요.”

1970-80년대 음악감상실인 쉘부르 출신 가수들은 30일 폐암으로 세상을 뜬 MBC PD 겸 라디오 DJ 이종환(76)을 두고 입을 모아 “음악을 무척 사랑한 분이었다”고 추억했다.

이종환은 지난 1973년 당시 인기를 누리던 포크 듀오 쉐그린(이태원·전언수)과 함께 종로 2가에 쉘부르를 열었다. 이종환이 DJ로 앉아 LP를 틀어주고, 고(故) 김정호, 쉐그린, 어니언스, 김세화 등의 가수들과 MC 허참 등이 라이브 무대에 오르는 식이었다.

쉘부르의 맏형 격인 쉐그린의 이태원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종환 형님이 우리(쉐그린)와 함께 쉘부르를 열었다”며 “통기타 가수들이 노래할 곳이 없던 시절 신인 가수들이 설 무대를 마련해준 분이었다. 당시 형님이 쉘부르를 힘들게 시작했는데 가수들에게 정식 개런티를 못 주는 걸 미안해하며 이 무대를 발판으로 좋은 조건이 있으면 가라고 했다. 사업이 아니라 음악을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은 이어 “쉘부르에서 라디오 DJ를 볼 때와 똑같이 외국 팝송 등을 틀어주며 음악과 가수에 대해 설명하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멤버 전언수는 “이종환이 당시 MBC PD 겸 DJ로 일하고 있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방송국을 그만두고 음악 감상실을 열었다”며 “그때는 쉐그린이 가장 유명한 가수였기 때문에 우리를 필두로 시작했다”고 되돌아봤다.

또 “우리와 이종환은 형님 동생 사이였다”며 “특별하게 후배들에게 말을 많이 하시는 분은 아니었다. ‘슬쩍’ 지나가면서 후배들을 위해 레코드를 하나 만들어 주는 식”이라고 추억했다.

포크 가수 강은철은 이른 아침인데도 빈소를 방문하러 가는 참이었다. 그는 종로 쉘부르 시절인 지난 1974년 이태원의 소개로 처음 무대에 올라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강은철은 “이종환 선생님의 특징은 절대 칭찬 등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쉐그린 무대에 잠깐 올라 두 곡을 불렀는데, 아무 말씀이 없다가 다음날 갑자기 시간을 배정해 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쉘부르는 지난 1974년 지하철 공사 때문에 건물이 폐쇄되자, 이듬해 명동에 다시 문을 열었다. 명동 시대에 들어서면서 권태수, 최성수, 위일청, 남궁옥분, 강승모, 신형원, 박강성, 양하영, 변진섭, MC 주병진 등의 스타들이 배출됐다.

음악에 대한 열성이 대단했던 이종환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일종의 아마추어 오디션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

강은철은 “이종환 선생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신인 발굴로 이어졌다”며 “아마추어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14곳에 불이 들어오면 합격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사회가 주병진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오디션 도전자가 아무리 잘해도 첫 번째에는 합격을 시키지 않았다”며 “두세 번은 와야 뽑았다. 자만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 후 한 사람씩 트레이닝을 오래 시키고, 음반을 만들어줬다”고 덧붙였다.

그는 생전 떠오르는 고인의 모습을 묻자 “쉘부르에서 따로 방을 만들어 놓고, 음악이나 방송에 대한 자료를 모으려고 신문 1면부터 끝까지 정독했다”며 “온종일 음악 자료 수집과 신인들의 음악 평가에 시간을 쏟았다. 40년 동안 본 모습 가운데 90%는 음악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 음악 인생에서 쉘부르를 빼놓을 수 없다. 장지까지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지난 1976년 이종환의 발탁으로 데뷔한 채은옥도 “말없이 행동하는 분이었다”며 “다른 사람들은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억했다.

그는 당시 레코드사를 운영하던 이종환의 처남을 통해 데뷔곡 ‘빗물’을 발표했다. 채은옥의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가 특이하고 괜찮으니, 한 번 레코드 취입을 해 보라”고 말했다는 것.

채은옥은 “신인을 발굴하는 ‘귀’가 뛰어난 분이었다. 들으면 바로 ‘감’이 왔다”며 “항상 선생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내 마음속에는 어떻게든 그걸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저녁에 빈소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환은 지난해 11월 건강상의 이유로 tbs FM ‘이종환의 마이웨이’에서 하차하고서, 끝내 다시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후배들은 “최근 쉘부르 40주년 공연 때문에 병원을 찾았지만 건강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면회를 못하고 돌아왔다”며 “지난해 말 선생님을 만난 쉘부르 모임이 마지막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가요계에 끼친 영향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종환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남궁옥분은 “나이 70이 넘어서까지 방송을 하는 DJ가 많지 않다”며 “포크 문화와 관계있는 사람 가운데 이종환과 인연이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랑비’같은 분이었다. 훈장은 아니어도 비슷한 방식으로 조명받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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