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별신굿의 마지막 화랭이 김정희·연출가 변정주, 두 남자의 낯선 실험
바다 내음 훅 끼치는 동해안 별신굿이 극장 안으로 들어온다.별신굿의 마지막 화랭이가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을 위로하는 굿판을 벌인다.
지난 2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변정주(왼쪽) 연출가와 마주선 별신굿 화랭이 김정희씨는 “이번 공연으로 대도시에 갇힌 관객들의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주고 싶다”고 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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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필로우맨’,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등으로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인 변 연출은 “배우가 무당을 연기한 적은 있지만 무당이 배우가 돼 극 속으로 들어온 건 처음일 것”이라며 눈을 빛냈다.
김정희는 동해안 별신굿의 마지막 화랭이다. 신라시대 ‘화랑’에 어원을 둔 화랭이는 악기를 다루고 재담을 하고 춤도 추는 등 종합적인 연희를 하는 세습무가의 남무(男巫)를 일컫는다.
그는 4살 때부터 굿판에 섞여들었다. 증조할아버지 김천득이 무녀와 결혼하면서 그에게도 굿은 ‘천륜’이 됐다. 중요무형문화재 82호 기능보유자 고 김석출이 그의 큰아버지다. 운명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천직으로 여겨선지 재미있고 좋더라”면서도 딴맘(?)을 품었던 사춘기를 떠올렸다.
“14~15살 때 다른 걸 해볼까 반항을 해봤어요. 너희는 아직 고생을 모른다는 아버님 말씀에 ‘그럼 제가 한번 고생해 보겠습니다’하고 나섰지요. 중국집, 이발소에서 일해보고 버스에서 잡지책도 팔아봤어요. 결국 굿이 얼마나 좋은지 깨닫고 돌아왔죠.”
김정희
그의 바람은 일제시대 때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천박한 미신으로 변질됐던 굿의 예술성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다. “세습무로는 제가 마지막이지만 동해안 별신굿은 없어지지 않아요. 새롭게 무대화 작업을 거치고 제자들에게 좋은 것만 전수해 굿을 미신이 아닌,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고자 합니다.”
‘신이 있는 풍경’은 별신굿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거리굿을 무대 위로 옮겨온다. 거리굿은 남은 잡신들을 달래며 정리하는 마지막 단계로 그 전까지 반주만 하던 화랭이가 전면으로 나서는 시간이다. 화랭이의 역할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자 변 연출이 거들었다.
“선동열 같은 역할인데? 마무리 투수(웃음).”
‘신이 있는 풍경’은 별신굿 속 이야기를 틀거리로 배경을 서울로 옮겨왔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 악덕 사장님 등 도시인들의 지난한 삶을 풍자와 유머, 흥으로 버무린다. 5·18 광주민주항쟁, 용산 참사, 천안함 폭침, 성수대교 붕괴 등 엄혹한 현대사의 단면들도 촘촘히 녹여냈다.
“별신굿이 한국전쟁 때 죽은 귀신을 위로하듯,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숨진 넋들을 불러내 그들의 영혼을 달래 주려는 의도죠.”(변 연출)
요즘 변 연출은 포항에 가서 1박 2일 동안 별신굿을 보고 올 정도로 굿 공부에 열심이다. “굿은 곧 놀이판이었어요. 다리, 허리 아프신 할머니들이 밤새 굿에 섞여 하루를 노시는데 저렇게 편찮으신 분들이 괜찮나 걱정을 했더니 해가 떠서 돌아가실 때 보니 기운을 받고 뿌듯하게 가시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신이 친구가 되는 경험도 그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굿판에 가니까 신이 친구더라구요. 놀고 먹이고 조롱도 하면서 신을 친근한 존재로 여겨요. 그리스 신화처럼요. 때로는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우리를 위로해 주기도 하는 신이란 게 기존 개념과 완전히 다르잖아요.”
거리굿이 끝나면 별신굿 장단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김정희의 꽹가리,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피앗고, 호주의 유명 드러머 사이먼 바커의 드럼이 어우러진 신명나는 즉흥연주와 별신굿 이수자들의 드렁갱이 장단이 울려퍼진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3-06-28 22면